세탁기·TV도 해킹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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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효창 시큐아이닷컴 보안3팀장

럭서리한 레스토랑. 딸과 함께 식사하러 나온 엄마가 집에 켜두고 온 가스 불을 걱정한다. "어머니 걱정 마세요" 하는 목소리와 함께 "짜자잔~" 꺼내든 핸드폰. 요정이 마법이라도 부리듯 무선전화 한 통화로 꺼져 버리는 가스불.

요즘 TV에 많이 나오는 아파트 광고 내용 중의 일부이다. 해리포터의 마법 지팡이나 액스맨의 염력이 아니더라도 내 손안의 전화기 하나면 수 백리 떨어진 내 집의 모든 것들을 제어할 수 있는 세상이 온 것이다.

무교동에 있는 한국전산원 15층의 'IPv6 체험관'에 가보면 인터넷을 통해서 집에 있는 화분에 물을 준다든지 집에 있는 가전제품들을 제어하거나 심지어 커튼을 여닫는 것까지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네트워크 기반의 IT 기술들의 놀라운 성장 덕분이다. 하지만 기술 발전이 보여주는 편리함의 이면에는 역기능들이 존재한다. 컴퓨터와 네트워크 기술의 발달에 대한 역기능으로는 대표될 만한 것은 바이러스나 해킹일 것이다.

얼마 전 만났던 모 전자 회사 개발자로부터 와이파이폰(무선랜 기반 VoIP 전화기)에 들어가는 운영체제로 리눅스(개인 PC용이나 서버용으로 현재 가장 많이 쓰이고 있는 공개 운영체제 중의 하나)가 장착된다는 사실과 향후에 디지털 TV 속에도 리눅스가 들어갈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요즘 해커들의 주 대상이 되고 있는 운영체제들 중의 하나인 리눅스가 가전제품의 제어용으로 장착된다면 향후엔 텔레비전이나 세탁기가 해킹되었다는 뉴스도 나오지 않을까?

작년에 미국에서는 휴대폰용 바이러스가 발견되어 세상을 약간 뒤집어 놓은 사건이 발생했다. 이제 바이러스가 움직이는 공간은 네트워크로 연결된 컴퓨터들만이 아니라 휴대폰으로 그 범위가 넓혀지고 있으며 향후 홈 네트워크의 발달에 따라 집안의 모든 가전기기들이 그 범위 속으로 포함될 것은 자명하다.

2003년 1월 25일에는 인터넷 강국이라는 한국에서 엄청난 사건이 발생했다. 소위 '1.25 대란'이 그것이다. 그 원인에 대해서 아직도 미심쩍은 부분이 있다고는 하지만, 그 대란의 주범은 '슬래머'라는 인터넷 웜으로 알려져 있다. 약 400 바이트 정도의 크기를 갖는 이 인터넷 웜이 가져다 준 피해액이 거의 10억달러(약 10조원) 정도가 되었다고 한다. 얼마 전 인도 정부가 발표한 쓰나미의 피해액이 약 12억 달러 정도인 것을 고려하면 '대란'이라는 말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이러한 해킹이나 웜, 바이러스들이 창궐한다고 해서 인터넷 쓰기를 포기할 것인가? '정보 보안'기술로 대처할 수 밖에 없다. 이제는 웬만한 PC에 적어도 하나는 설치되어 있는 바이러스 백신을 비롯하여, 침입차단시스템, 침입탐지시스템, 침입방지시스템, 바이러스월, 취약점분석도구 등이 있다.

1990년대 이후 각 기업에서의 보안에 대한 투자는 매년 점차 증가하고 있다. 또한 과거에는 일어날지도 모를 사고에 대비하는 보험적인 성격으로 보안에 대한 투자를 했었다면 이제는 "보안 사고는 항상 발생한다" 라는 전제 하에 발생 시 피해액을 최소화하는 경비 절감적 측면으로 바뀌고 있다.

매년 태풍이 한반도를 강타하고 여름이 오기 전에 그에 대한 대비를 항상 하지만 한번도 태풍에 대한 이재민이 발생하지 않은 해가 없었으며 그 피해액은 상상초월 그 자체였다. 그래도 태풍은 오지 않는 계절이라도 있지만 네트워크 보안사고는 항상 시시각각으로 우리 생활을 위협한다. 이런 위협으로부터 개인뿐만 아니라 기업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기본적인 보안 솔루션들은 채택되어 각 쓰임에 맞게 사용되어야 할 것이다.

남효창 (시큐아이닷컴 보안3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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