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리 문 의혹 … 확인된 건 거의 없지만 여론 부담에 결국 퇴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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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헌재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이 지난달 24일 공직자 재산 공개 직후 불거진 부동산 파문으로 중도 하차했다.

이 전 부총리가 지난해에만 4억7000만원을 벌어 재산이 91억원으로 불었다고 신고하자 세간의 화제가 됐다. 1998년 금융감독위원장 재직 시절 공개한 재산과 비교하면 6년 만에 무려 65억원이 늘어난 것이었다. 이 같은 재산증식은 무엇보다 부동산 거래 때문이었다. 79년 이 전 부총리가 공직에서 물러나 미국 유학길에 오르면서 사뒀다가 2003년과 2004년 판 땅에서 46억원의 차익이 생겼던 것이다. 곧바로 이 전 부총리 부인의 부동산 투기 의혹이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숱하게 불거진 의혹 가운데 정작 사실로 확인된 것은 몇 가지 안 된다. 상당부분은 근거가 약하거나 해명이 이뤄졌다. 하지만 진위를 떠나 의혹이 계속 제기되는 것 자체가 부동산 정책의 최고 책임자에겐 부담이 됐다. 그래서 사실관계보다는 여론재판이 경제수장을 퇴진시키는 데 더 큰 몫을 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부동산 투기 논란=79년엔 서울사람이 지방의 논밭을 살 수 없었다. 이 때문에 이 전 부총리 부인 진모씨는 주소지를 경기도 광주시와 전북 고창군 등지로 옮겨가며 논밭을 샀다. 당시 이 전 부총리 일가는 미국에 거주하고 있었거나 서울에 살았기 때문에 '위장전입'이란 지적은 면키 어렵게 됐다. 그러나 땅을 사놓은 뒤 24년 동안이나 묵혀둔 것을 부동산 투기로 볼 수 있느냐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전북 고창군 공음면 일대 땅에는 이 전 부총리 일가가 실제로 농장을 조성해 놓고 지금까지 수시로 찾아가 투기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특혜 시비=진씨 동생의 농장이 있는 전북 고창군 공음면 일대가 2004년 12월 재경부에 의해 지역특구로 지정된 것도 특혜 시비를 불렀다. 그러나 지역특구가 된다고 큰 혜택이 있는 것은 아니다. 지역축제를 할 때 교통경찰을 지원해 주고 홍보를 도와주는 정도다. 무엇보다 특구로 지정된 뒤로 공음면 일대 땅값이 뛰었다는 징후를 찾을 수 없다.

광주시가 2004년 5월 투기지역으로 지정되기 직전에 진씨가 광주시 땅을 모두 처분한 것은 정보를 미리 알았기 때문이 아니냐는 의혹도 불거졌다. 더욱이 광주시는 이 전 부총리 취임 직후인 2004년 2월 투기지역 지정 후보에 올랐다가 유예된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광주시가 2004년 2월 투기지역으로 지정되지 않은 것은 건설교통부의 요청에 의한 것으로 확인됐다. 투기지역으로 지정되면 양도세를 공시지가가 아니라 실거래가로 내야 하는 불이익을 받는다. 그러나 진씨는 실거래가로 재산신고를 했기 때문에 투기지역 지정 여부가 어차피 절세에 도움이 안 됐다는 것이다.

◆계약서 조작 논란=먼저 이중계약서 의문이 제기됐다. 진씨는 광주시 땅을 차모씨에게 16억6000만원을 받고 팔았다. 그러나 차씨는 그 땅을 담보로 성남농협에서 15억원을 대출받았다. 성남농협의 감정가는 26억원이었다. 매각대금이 시세에 비해 턱없이 쌌다는 얘기다. 전셋집에 사는 트럭 운전사였던 차씨가 15억원이나 되는 돈을 신청한 지 4일 만에 대출받을 수 있었느냐도 궁금증을 낳았다.

하지만 이 역시 진씨가 거래 통장 내역을 공개하면서 상당부분 해명됐다. 진씨 통장에 돈이 들어온 날짜와 액수가 등기부등본상 차씨나 임야를 산 이모씨가 대출받아 송금한 날짜.액수와 일치한다. 어느 한쪽은 조작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양쪽을 똑같이 맞추기는 어렵다.

정경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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