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코리안] 이집트 한인 교회 여성 봉사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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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집트 카이로 북부 슈브라 지역에 위치한 한국진료소에서 한인 여성들이 이집트 아기를 씻기고 있다. 아기의 초롱초롱한 눈망울이 마치 목욕을 즐기는 표정 같다.

이집트 카이로 북부의 슈브라는 외국인의 발길이 뜸한 곳이다. 서민 거주 지역이다. 바로 이곳 깊숙이 위치한 알하프지야라는 시장에 매주 화요일 오전만 되면 대여섯 명의 한국 여성이 나타난다. 시장 안쪽에 자리한 한국 진료소에서 '아기 씻기기' 봉사활동에 참여하기 위해서다.

"큰 일은 아니지만 함께 사는 이집트의 이웃들에게 작으나마 행복의 웃음을 전해주는 일이 즐겁기만 합니다." 벌써 10년째 봉사하고 있는 교민 정순영(49)씨의 말이다. 이곳은 물이 귀한 데다 온수시설을 갖춘 집이 거의 없어 목욕은 사치에 가깝다. 그래서 가난에 찌든 이집트 주민들에게 작은 기쁨이라도 주기 위해 15년 전 시작된 봉사활동이 바로 아기 씻기기다. 이 봉사활동은 누구나 참여할 수 있고 또 회원 명단도 없다. 한인 교회에서 기저귀.비누 등을 지원받아 그저 매주 화요일 오전이면 모여 아기 씻기기에 나서는 것이다. 보통의 경우 교민 여성 두 명은 욕조에서 아기를 씻기고 다른 두 명은 테이블에서 아이 몸의 물기를 닦고 귀.손톱.발톱 등을 다듬어 준다. 나머지 두세 명은 분.로션을 발라주고 옷을 입힌다. 새 기저귀와 바지 한 벌은 이집트 거주 한인들이 마련한 작은 선물이다.

이미 수만 명의 아기를 씻긴 이 봉사활동은 이젠 이집트에서 꽤나 유명해졌다. 소문을 듣고 마리얌이라는 여성은 4개월 된 아기 미나를 안고 차로 30분의 먼 거리에서 왔을 정도다. "우리 아기가 환한 달덩이 같아요." 목욕을 마친 아기를 받아든 마리얌의 탄성에 한인 봉사대원들의 얼굴에도 미소가 퍼진다.

5년째 아기들을 씻겨온 김영미(41)씨는 "2개월 동안 배냇 때가 머리에 달라붙어 있는 아기도 있었다"고 회상한다. 대부분 온수시설이 없는 까닭에 태어난 이래 집에서 한 번도 제대로 된 목욕을 못 해본 아이들이 적지 않다는 얘기다. 때문에 미숙아와 피부병에 시달리는 아기들을 씻길 때는 주의도 요구된다. 섭씨 50도에 달하는 한여름에 에어컨도 없는 방에서 뜨거운 물로 아이들을 씻기다 보면 봉사대원들도 땀으로 목욕을 하곤 한다. 그러나 피부병 없이 깨끗하게 커가는 이 곳 아이들을 보면서 큰 행복을 느낀다는 게 교민 봉사대원들의 한결같은 목소리다.

카이로=서정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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