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환율 양보, 미·EU는 IMF쿼터 양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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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호 11면

23일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중앙은행총재 회의 직후 도미니크 스트로스칸 국제통화기금(IMF) 총재(왼쪽), 티머시 가이트너 미국 재무장관(가운데), 셰쉬런(謝旭人) 중국 재정부장이 회의 결과를 브리핑하고 있다. [경주 AP로이터=연합뉴스]

합의를 못 하면 귀국편 비행기가 없을 수 있다는 이명박 대통령의 ‘뼈 있는 농담’이 먹혔기 때문일까. 23일 경주에서 폐막한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중앙은행총재 회의에서 G20이 환율과 국제통화기금(IMF) 개혁 같은 굵직한 핵심 현안에 전격 합의했다. 이런 이슈들을 다음 달 열리는 서울 G20 정상회의에서 제대로 다루지 못할 경우 서울 회의는 실패작이라는 평가를 피하기 힘들었다. 또 국제경제 협력을 위한 최상위 포럼으로 명명된 G20의 실행력에 대한 회의론도 걷잡을 수 없이 커질 수밖에 없었다.

드라마 같은 경주 G20 합의 어떻게 나왔나

익명을 요청한 G20 정상회의 준비위 핵심 관계자는 “드라마틱한 합의였다”고 말했다. 첨예한 환율 문제에선 중국이 전향적으로 양보했고, IMF 쿼터 개혁에선 미국과 유럽이 한발 뒤로 물러섰다. 이번에 합의가 안 되면 모두에게 손해라는 공감대가 컸다. 한국은 자기 아이디어를 갖고 중재하고 설득하며 의장국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G20 준비위 관계자는 “한국은 의장국으로서 지적인 리더십을 바탕으로 성공적으로 대안을 제시했다”며 “이제 아무도 한국을 허수아비 의장국으로 생각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경주에서 굵직한 합의가 도출됐기 때문에 서울 정상회의에선 이를 확인하고 구체화하는 회의가 될 것”이라고 했다.

IMF 개혁 마침표 찍었다
IMF 쿼터를 신흥개도국과 과소대표국으로 5% 이상 이전한다는 합의는 이미 지난해 피츠버그 G20 정상회의에서 나왔다. 하지만 누구 지분을 줄여 누구에게 줄지를 정하는 게 골칫거리였다. 어느 나라도 지분이 줄어드는 상황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자칫하면 총론에서 합의하고도 각론에서 헤맬 수 있는 의제였다.

이번 경주회의에선 쿼터 이전 규모를 기존에 합의한 ‘5% 이상’에서 ‘6% 이상’으로 상향 조정했다. 더 중요한 것은 논란의 핵심이었던 쿼터 이전 공식에 완전하게 합의했다는 점이다. 미국은 IMF 비토권을 유지하는 선에서 쿼터 일부를 양보했다. IMF는 85%의 찬성으로 의결한다. 그래서 쿼터 17%를 보유한 미국이 유일하게 노(NO)라고 할 수 있는 국가였다. 합의안에 따르면 미국 쿼터는 16%대로 줄어든다. 유럽도 이사국 자리와 지분을 내놨다. G20 경주회의를 앞두고, 그리고 회의 중간에 G7이 따로 회동을 한 것도 미국과 유럽이 IMF 개혁안에 합의하기 위해서였다. 개도국이면서 쿼터가 많아 과다대표국에 속했던 사우디아라비아의 경우 쿼터를 줄이되 어느 정도 제한요건을 붙여 쿼터가 너무 많이 줄지 않도록 했다.

지분 이전으로 중국이 쿼터 순위 3위로 뛰는 등 브릭스 국가들이 모두 쿼터 순위 톱 10에 들게 됐다. 잘나가는 신흥국들이 제 실력에 맞는 IMF 권력을 행사하게 된 것이다. 한국도 18위에서 16위로 쿼터 순위가 높아진다.

‘경상수지 흑자는 선’ 고정관념 깨다
미국은 회의 첫날, 대외불균형을 줄이기 위해 경상수지를 국내총생산(GDP)의 4% 이내로 줄이자는 의견을 냈다. 이 아이디어는 사실 한국에서 비롯됐다. 대외불균형을 해결하려면 반드시 환율을 언급해야 하지만 과거의 경우 항상 중국의 반대가 만만치 않았다. 중국은 토론토 정상회의 직전 위안화 환율 변동폭을 일부 확대했다. 당시 G20은 중국의 이 같은 조치를 환영한다는 표현을 공동선언문에 넣으려 했지만 이마저도 중국이 반대해 성사되지 않았다. 중국이 칭찬까지 마다한 이유는 그 같은 표현이 과거의 잘못을 전제하는 것으로 비칠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한국이 고민 끝에 환율 대신 돌파구로 제시한 게 경상수지였다. 미국이 관심을 보였고, 미국은 이를 토대로 회원국을 설득했다. 그러나 이 제안에 경상수지 흑자국인 독일과 일본 등이 반대했다. 경상 흑자를 내는 사연이 다 제각각 다른데 구체적인 수치로 변동폭을 정하는 것은 부담이 됐기 때문이다. G20은 “과도한 대외불균형을 줄이고 경상수지를 지속가능한 수준으로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되는 모든 정책수단을 추구한다”고 합의했다. 항상 흑자가 나게 마련인 대규모 자원 생산국을 포함해 국가적·지역적 환경을 고려하되, 경상수지 불균형이 과도한지 아닌지를 보여주는 가늠자인 ‘예시적인 가이드라인’을 만들기로 했다. 이를 두고 경제학적으로 큰 의미가 있는 합의라는 지적도 있다. ‘경상수지 흑자는 항상 선’이라는 국제사회의 고정관념이 깨지는 전기가 됐기 때문이다. 경상수지 흑자국에 대한 규제안을 만든 것도 의미가 있다. 브레턴우즈 체제 이후 경상수지 적자국은 외환보유액이 줄고 통화가치 하락 압력에 직면했다. 하지만 경상수지 흑자국을 제어할 뚜렷한 방법은 없었다.

환율 관련 언급이 ‘시장지향적인 환율’에서 ‘시장결정적인 환율’로 바뀐 것도 의미가 있다. G20 핵심 관계자는 “두 단어 사이의 느낌이 확 다르다. 시장지향적은 ‘시장에 많이 맡기도록 노력하겠지만 필요하면 시장에 개입한다’는 뉘앙스가 있지만 시장결정적은 ‘시장개입을 안 하겠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환율전쟁이 이번 합의로 종식될 수 있을까. 이번 합의를 강제할 구속력이 없다는 점에서 회의론도 나온다. G20 준비위 관계자는 “G20 합의는 원래부터 구속력이 없다. 회원국 간의 압력이나 국제사회의 이미지 등을 감안할 때 자발적으로 이행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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