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 지도가 바뀐다] 下. 수도권·지방 균형발전 시대 올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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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여성부가 서울에 남는 이유는.

"여성 상위 시대이니까."

-지역 균형발전을 추진하기 위해 행정도시를 만든다면서 지방행정을 총괄하는 행정자치부는 왜 옮기지 않는가.

"수도권을 지방 중의 지방, 행정자치의 중심으로 키우기 위해."

충남 연기.공주에 세우기로 한 행정도시에 여성부나 행정자치부를 이전하지 않는 이유가 분명하지 않아 시중에서 나도는 그럴 듯한 풀이다. 정치권이 공론화 과정을 거치지 않고 서둘러 행정도시특별법을 처리했기 때문에 생기는 일이다. 정부와 여당은 수도권 분산과 지방 균형발전을 명분으로 행정도시 건설이나 공공기관 이전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정치권의 입김이 지나치게 강하게 작용했고 사전 논의가 부족했다는 점에서 후유증과 시행착오를 피하기 어렵다는 게 대다수 전문가의 지적이다.

◆ 행정도시 기능 명확해져야=신행정수도후속대책위원회가 3개 대안을 압축하는 과정에서 각계가 참여해 토론을 벌였다. 그러나 정작 여야가 최종 합의한 12부4처2청 이전안은 공개토론에 부치지 않았다. 정치권은 행정도시의 성격과 기능을 꼼꼼히 짚어보지 않고 몇 개 부처를 옮길지부터 정했다. 그러다 보니 지방행정을 총괄하므로 지역균형발전의 구심점에 있어야 제격인 행정자치부가 이전 대상에서 빠졌다. 여성부의 경우 꼭 옮겨야 한다는 것을 설득하기 어려워 이전대상에서 뺐다는 후문이다. 온영태 경희대 교수는 "참여정부가 추진하는 국토 균형발전 전략 자체가 작동 가능한 것인지 따져보는 토론이 전혀 없었다"며 "국토경영의 큰그림이 너무 엉성하게 그려졌다"고 지적했다.

또 행정도시에는 행정부처 외에 국책연구기관.대학교.기업 등이 들어설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행정도시에 자족기능이 부족하니 다른 기능을 덧붙이겠다는 것인지, 이 도시가 다른 지역발전의 선도 역할을 하도록 한다는 것인지 명확지 않다.

42만 평 규모의 공단, 대학교 1~2개, 20여 개의 국책연구기관, 주거단지 등이 어우러진 도시에 공무원 1만 명이 일한다는 청사진 외에는 특별할 게 없다. 행정도시 건설을 단순히 수도권의 행정기관을 옮기는 것이 아니라 지역 균형발전의 첫 단추를 꿰는 것이라면 인근 충청권과 수도권, 강원.호남.제주.영남권과의 네트워크 구축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정부는 신행정수도를 추진하면서 남해 축.서해 축.동해 축 등 3개 축으로 구성된 π(파이) 형 국토 축에 신행정수도를 중심으로 6개 지역이 연계된 6각형 네트워크 국토 축을 결합한 'π+6각형' 골격을 제시했다. 행정도시로 바뀌면서 정부는 아직 이 골격을 어떻게 바꿀지 정하지 못하고 있다. 남기헌 충청대 교수는 "행정도시의 역할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된다면 나중에 당초의 신행정수도 취지에 맞게 이전대상에서 빠진 행정기관들도 이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정치권 입김과 로비 차단해야=지방자치단체들이 공공기관 유치에 사활을 걸고 있다. 물밑 로비와 구애 작전이 진행되고 있다. 한국전력.한국토지공사.대한주택공사.한국도로공사 등이 인기있는 공공기관이다. 덩치가 커 지역 발전에 보탬이 되기 때문이다. 지자체별로 수십명의 유치위원회를 구성하거나 비공식적으로 향우회까지 가동하고 있다. 균형발전위원회와 건설교통부 관계자들은 공공기관 이전지에 대해서는 함구하고 있다. 소문만 나도 지자체들에 시달리기 때문이다. 이처럼 유치 열기가 후끈 달아오르자 지자체의 실제 사업추진 역량보다 유치 역량이 중요한 변수로 떠오를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한 전문가는 "사업을 추진하는 역량보다 자금을 끌어들이는 역량이 더 중요했던 버블기의 벤처처럼 배분 권한을 쥔 중앙정부가 지자체의 유치 능력에 현혹될 수 있다"고 말했다. 공공기관 이전 결과를 놓고 지역 간 갈등, 중앙정부와 지자체 간 갈등이 오히려 심각해질 수도 있다. 특정지역에 대한 특혜 시비, 공공기관 노조의 반발 등이 어우러져 공공기관 이전이 지역 간 갈등의 불씨가 될 수도 있다.

허귀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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