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글랜드 여자축구대표팀엔 변호사·교사·사장님·홍보우먼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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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축구 종가’ 잉글랜드 여자축구 대표팀에는 온라인 쇼핑몰 사장과 초등학교 교사가 함께 뛰고 있다.

 잉글랜드에는 세계 최고 축구 리그로 꼽히는 프리미어리그가 있다. 프리미어리그 팀 중 아스널·첼시·에버턴 등은 여자 축구팀도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여자 선수들과는 프로 계약을 하는 게 아니다. 잉글랜드 팀의 주장 페이 화이트(32·아스널)는 “클럽과는 시간제 계약을 하고 경기를 뛴다”고 전했다. 잉글랜드 대표팀 20명 중 미국 프로리그에서 뛰는 4명을 제외하면 변호사·사회복지사·구단 홍보팀 등 다양한 직업을 가지고 있는 ‘투잡족’이다.

19일 수원종합운동장에서 열린 피스퀸컵 국제여자축구대회에서 한국의 김수연(왼쪽 둘째)이 슈팅하려 하자 잉글랜드 선수들이 저지하고 있다. 이번 대회에 출전한 잉글랜드 대표선수들은 각자 직장에서 일하다 대회 때만 수당을 받고 뛰는 ‘투잡족’이다. [수원=연합뉴스]

 19일 한국과 경기(0-0)에서 골문을 지켰던 레이철 브라운(30·에버턴)은 “시간제 계약으로는 생활하기 힘들다. 테스트를 통과해 대표팀에 뽑혀도 수당이 많지 않다”고 말했다. 브라운도 초등학교 체육교사로 일하고 있다. 2000년부터 잉글랜드 국가대표로 뛴 레이철 유닛(28·에버턴)은 온라인 쇼핑몰을 통해 액세서리와 티셔츠를 팔고 있는 ‘사장님’이다. 에니올라 알루코(26·보스턴 브레이커스)는 법대를 졸업하고 2008년부터 변호사로 활동했다. 그러다 2009년 미국 프로리그로 진출하며 변호사 일은 잠시 쉬고 있다.

 잉글랜드 대표 선수들은 대부분 초등학교 때 지역 클럽을 통해 축구를 접한다. 사회복지사로 일하고 있는 소피 브래들리(21·린콘 시티)는 “초등학교 때 오빠가 축구를 했다. 오빠를 응원하러 갔다가 축구를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잉글랜드 축구협회 관계자는 “여자축구 클럽만 8000개 정도 있고 클럽에서 뛰고 있는 아마추어 선수는 15만 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고 했다. 축구를 접할 기회가 많으니 자연스럽게 여성 축구 인구가 많아진 것이다.

 잉글랜드 여자축구의 힘은 이런 넓은 저변에서 나온다. 잉글랜드 대표팀은 21일 수원종합운동장에서 열린 2010 피스퀸컵 국제축구대회에서 뉴질랜드와 0-0으로 비겨 12경기 무패(8승 4무)를 기록했다. 잉글랜드는 최근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2009년 유럽여자선수권에서 준우승을 차지했고, 2011 독일 여자월드컵 유럽 예선에서 7승1무로 여유 있게 진출권을 확보했다.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도 9위다.

 한국 여자축구는 2010년 U-17팀의 월드컵 우승과 U-20팀의 동메달이라는 기적 같은 성과를 냈다. 하지만 전국에 여자 축구팀이 65개에 불과할 정도로 저변은 얇다. 등록선수도 1450명뿐이다.

올해 3월 창단한 부천시설관리공단은 8월 해체 통보를 받았다. 최인철 여자축구 대표팀 감독은 잉글랜드와의 경기 후 “한정된 자원에서 대표팀을 뽑다 보니 컨디션이 좋지 않은 선수들을 데리고 할 수밖에 없다”고 한숨을 쉬었다.

 이용수 세종대 교수는 “4년제 대학에서 축구팀을 운영하는 곳은 1개(위덕대)뿐이다. 그래서 학부모들이 딸들에게 축구 시키기를 꺼리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여자축구에 투자하는 금액 중 일부를 활용해 잉글랜드처럼 프로축구단에서 지역에 연령대별 여자축구 클럽을 만드는 것도 좋은 대안이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한편 피스퀸컵 A조 3경기 모두 0-0으로 비겨 추첨을 통해 한국이 결승에 진출했다. 한국은 23일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호주와 결승전을 치른다.

김민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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