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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 피치] 195. 한기주가 '거목'이 되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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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한기주(동성고 3년)를 둘러싼 열기에 찬물을 좀 끼얹어야겠다. 한기주가 과대포장됐다거나 그로 인해 타오를 프로야구의 불을 꺼버리자는 게 아니다. 그럴 의도도, 이유도 없다. 한기주라는 이름의 될성부른 나무가 잘 자라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몇 년, 아니 몇십 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 한 유망주라는 그를 바라보는 바람직하지 못한 시선과, 그 주변의 섣부른 어른들, 그리고 한기주 본인이 보여준 설익은 태도 탓에 그 나무에 상처가 날까 봐서다.

그가 계약을 맺은 지난 8일 누군가 그와 인터뷰를 하면서 '프로야구 신인 최대어'라고 불렀다. 한기주는 학생이다. 고3(그것도 1학기에 재학 중인)이다. 프로야구 역대 최고계약금(10억원) 때문에 그런 표현을 썼겠지만 그런 시각은 한기주를 프로야구선수로 취급해버릴 우려가 있다. 그가 일찌감치 장래직업을 프로야구선수로 못박은 '취업반 학생'이라고 해도, 학기 중인 학생이 프로야구단 유니폼을 입고 미디어에 오르내리는 건 너무 이르다. 학원 스포츠와 관련된 우리 사회구조가, 프로야구 제도가 비정상적이라는 걸 대변해주는 대목이라 더 씁쓸하다.

"진로는 기아로 결정했다. 이제 대통령배 우승에 전념하느라 소홀했던 학기말시험 준비를 해야 된다. 힘든 결정이 끝났으니 학교친구들과도 시간을 보내고 차분히 프로야구를 준비하겠다."

말 잘했다. 그런데 이건 한기주의 인터뷰 내용이 아니다. '이랬더라면 더 좋았을걸'이라는 뜻에서 가상으로 써 본 말이다. 실제로는 이렇게 말했다.

"국내에서 7년 정도 활동한 뒤 메이저리그에 도전하겠다. 내년 데뷔 후에는 10승 이상을 올려 신인왕이 되고 싶다. 국내 고교야구에 라이벌이라고 생각되는 선수는 없다."

인간적이라기보다는 뭔가 기계적이다. 메이저리그라는 꽃, 프로야구 신인왕이라는 열매, 그런 생각은 이제 줄기를 뻗기 시작한 열여덟의 한기주에게 무겁다. 마음을 급하게 만들어 부담이 될 것이다.

기아 유남호 감독의 말도 한기주에게 짐이 될 것 같다. 유 감독은 4월 13일 최우수 고교대회에 출전한 한기주의 투구를 보고 공개적으로 "당장 마무리로 써도 되겠어"라고 말했다고 한다. 김진우가 생각난다. 4년 전 광주진흥고를 고교 정상에 올려놓고 2002년 당시 최고액 7억원을 받고 기아에 입단한 '괴물'(별명이 같은 계열이다). 그 김진우도 '당장 선발'이었고, '당장 마무리'였다. 그가 프로 3년 동안 기대만큼 했을까. 3년 성적 30승18패 방어율 3.64다. 준수하지만 괴물답지는 못하다. (그래도 기대만큼 했다고? 그럼 포스트시즌 성적=2패, 방어율 14.54!). 서두르면 일을 망친다. 스물두 살 김진우는 여전히 배우는 중이고, 커가는 투수다.

한기주는 큰 나무로 자라날 고교생 유망주다. 그래도 아직 묘목이다. 주위에서, 그리고 한기주 스스로 벌써 꽃을 보려 하고, 열매를 따려고 대들면 나무가 제대로 자랄 수 있겠는가.

<텍사스에서>

이태일 야구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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