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내 생각은…

한류에 유라시아 정신 접목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9면

요즘 한류란 단어가 유행이다. 최근엔 한류를 산업화해야 한다는 말들이 많다. 하지만 정확히 어떤 게 한류인가. 그리고 어떤 한류 산업을 부흥시켜야 하는가.

이런 의문에 대한 대답을 하기 위해선 우선 한류산업의 문화적 콘텐트를 구성할 우리 문화의 뿌리를 파 보아야 한다. 문화의 뿌리는 종교와 예술이다.

이데올로기도 흔히 종교적 담론에서 시작되거나 예술적 상상력과 결부되어 있었다. 영상문화의 발전과 함께 그것이 산업이 되고, 생존의 조건이 되는 시대다.

그러나 종교와 예술은 양심의 자유와 밀접한 관련이 있고 다원적인 상상력이 그 바탕이다. 그런데 최근 한민족의 원형질적 열정의 표상으로 세계를 놀라게 한 '붉은 악마'의 축제를 탄생시켰던 신명의 바람은 죽고, 돈이 되는 한류만 남은 양상이다. 그건 문화가 아니다. 곧 사라질 유행성 돈벌이일 뿐이다.

한류의 확산을 희망한다면 유행성 돈벌이보다는 한반도를 포함하는 유라시아 대륙의 고대적 상상력과 문화적 보편성에 대한 인식과 함께 동북아를 포괄하는 유라시아의 역사를 냉철히 보는 시각이 필요하다.

을사늑약 100년, 해방 60년, 그리고 새천년을 맞은 지 6년차 봄이다. 그러나 100년 전 러일전쟁과 아시아에서의 패권다툼이 양식을 바꿔 재현되고 있는 듯하다. 최근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유럽의 슬로바키아에서 만나 북한의 핵문제를 비롯한 한반도 문제를 논의하고 공동성명을 통해 북한의 핵개발을 반대하는 공동입장을 표명하였다. 100년 전 러일전쟁이 한반도를 매개로 한 동북아 지역 패권다툼의 일환이자 무너져 가는 제국, 대륙세력 러시아와 발호하는 제국이자 해양세력인 일본 간의 전쟁이었다면, 지금의 북한 핵개발에 대한 국가 간의 논의와 갈등은 수퍼파워 미국과 그들 말로 강성대국, 강소국을 꿈꾸는 북한 간의 갈등이 축이 되어 있다.

보기에 따라서는 100년 전과 지금의 상황은 비교가 되지 않는다. 게임의 양상은 훨씬 복잡하기도 하다.

6자회담에서 발언권을 높여가고 있는 중국의 변수도 만만치 않다. 사실 중국 공산당의 조종에 의한 동북공정 같은 치밀한 한반도 정책은 통일 후 북한 땅에 대한 야욕이 내재해 있는 것으로도 밝혀지고 있다. 더구나 동북아시아 한.중.일 삼국 간에는 역사와 영토논쟁이 불붙어 있다. 한반도 민초들에게 동북공정은 다가올 황사와 함께 참담한 중화 속국의 불편한 기억을 되살리고, 독도에 대한 일본의 집착은 그들의 역사교과서 왜곡과 함께 참담한 일제 치하를 상기시키고 있다. 사할린 탄광으로 징용당했던 할아버지들과 동남아 각처를 끌려다니던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더 큰 좌절과 분노를 일깨우고 있다.

그런데도 100년 전, 60년 전의 속국 또는 식민지 의식과 서구문명에 대한 열등감은 지속되고 있다. 우리의 이웃들이 자식들에게 첨단문화와 지식을 흡수하게 하려는 욕심에서, 때로는 조기유학을 위해 미국.중국.일본으로 내몰고 있는 것이 그 방증이다. 물론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고 했다.

그러나 대학과 기업, 관계, 언론계의 각 부서에서 또는 모든 시험에서 국어와 국사의 비중 하락과 함께 유럽의 제국가와, 그 언어와 문화에 대한 비중은 급속히 추락하고 있다. 대학에는 앞으로 불어불문학과 독어독문학을 가르칠 예비인력인 대학원생들이 이미 (거의) 고갈되어 있다. 유럽 문물과 문화야말로 미국과 일본, 러시아와 중국까지의 현대문명의 원뿌리이기도 한데 말이다.

작금의 국제관계는 황.백인종 간의 대결 가능성과 기독교와 이슬람 세계의 종교분쟁 양상까지 보이는 분열의 시대이기도 하다. 중국의 급속한 성장과 이슬람권의 만만치 않은 대미 항전 태세가 한반도의 갈등과 언제라도 연루될 수 있는 불확정성을 내포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의 시각은 하시의 위기관리를 위해서도 동북아시아를 넘어 지구촌 세계로 열려야 한다. 그리고 담론을 키워야 한다.

한반도가 대륙으로 연결된 지구 북반구는 '붉은 악마'가 보여준 공동체 정신, 신명의 뿌리인 샤머니즘과 고아시아 문화가, 청동기시대 이래 또는 스키타이 문명 이래 초원의 길로 유럽까지 대평원으로 연장된 유라시아 한 덩어리 땅이다.

우리의 담론은 늘 해양문화에 뿌리를 둔 미국과 일본, 그리고 중국 중심적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제주 남단에서 시작해 핀란드까지 넓은 대륙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할 시점이다. 한반도의 뿌리, 한민족 문화의 원형인 유라시아 대륙의 의미를 재음미하고 고양해야만 한류도 지속될 수 있다.

이길주 배재대 교수.시베리아센터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