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북한 노트북을 열며

새 외교안보 라인의 책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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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이명박 정부의 대외정책에서 가장 큰 성공을 꼽자면 현재 한반도 정세의 주도권을 잡은 것이다. 지난 6일 워싱턴 포스트(WP)는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 행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해 “한마디로 모든 것이 한국에 달려 있다”고 보도했다.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이 대북정책 검토회의에서 “아시아에서 우리의 동맹국은 한국·일본·호주…”라고 말해 일본을 놀라게 한 것이나, 커트 캠벨 미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가 도쿄에서 “미국은 한국과의 협력을 최우선시하고 있다. 지금 양국관계는 르네상스”라고 말한 건 WP의 보도가 맞았음을 보여준다. 미국이 북한 문제를 놓고 이렇게 한국의 판단을 지켜보고 따라가는 정책(wait-and-follow policy)으로 일관하는 건 전례가 없는 일이다.

 중국도 한국만 바라보고 있다. 우다웨이 중국 한반도사무특별대표는 지난 8월 한국과 일본·미국을 순방하며 6자회담 재개를 촉구했지만 “남북관계부터 개선돼야 북한과 대화할 수 있다”는 대답만 듣고 빈손으로 귀국해야 했다. 한·미·일의 철통 ‘천안함 제재’에다 3대 정권 세습 부담까지 겹친 북한도 연일 정부에 유화 제스처를 던지며 대화를 애걸하고 있다.

 하지만 게임은 지금부터다. 정부가 모처럼의 호기를 적시에 활용하지 못하면 상황은 금방 불리하게 바뀔 수 있다. 궁지에 몰린 북한이 무슨 불장난을 벌일지 불안한 미국은 어떤 식으로든 평양과 대화의 채널을 잇고 싶어 하는 게 사실이다. 북한의 고립(정확히는 자신들의 고립)을 싫어 하는 중국은 말할 나위 없다.

 정부 핵심 관계자가 최근 “다음 달 중순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가 끝나면 한반도 정세가 바뀔 것”이라고 말한 건 정부도 이런 상황을 인식하고 남북관계 변화를 모색 중이란 얘기가 된다. 천안함 사건 7개월 만에 불기 시작한 반전(反轉) 바람의 핵심은 뭘까. 집권 4년차를 맞는 이명박 정부로선 내년 상반기를 목표로 3차 남북정상회담을 구상 중일 가능성이 크다. 북한이 사과할 가능성이 희박한 천안함 문제는 일단 별도의 포럼으로 돌리고, 중국을 통해 북한의 비핵화 이행을 약속받는 선에서 6자회담의 돌파구를 마련한 뒤 정상회담을 추진한다는 게 외교가에서 흘러나오는 정부의 시나리오다. 때마침 이명박 대통령은 집권 후반기 외교안보라인 인선을 완료했다. 정통 북미 라인 출신이면서도 유연한 현실주의자로 평가받는 김성환 외교부 장관, 다자외교와 북핵 문제에 두루 능한 천영우 외교안보수석의 기용이 눈에 띈다.

 이명박 정부는 한·미 동맹 복원과 북한 비핵화에 관한 한 2년 반 동안 흔들림 없는 기조를 지켜 왔다. 그런 만큼 이 대통령이 김 위원장을 만났을 때 핵무기를 포기한다는 확실한 약속과 행동을 끌어낼 수 있다는 전제라면 남북한의 상생을 위한 정상회담에 반대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전제를 보장받으려면 그동안 숱하게 목격해온 북한의 꼼수를 차단할 지략과, 김정일·김정은의 급소를 파악해 유사시 카드로 대비해 놓는 치밀함이 필수다. 이명박 정부는 그런 능력을 갖고 있을까.

강찬호 정치부문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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