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모닝 서울] “한국 젊은 세대 매너는 국제적 수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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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Excuse you!”(너를 용서해라!)

 미국에서 한번도 안 써본 이 문장을 실베스터 피터(미국·48·고려대 국제어학원 초빙교수·사진)는 한국에서 종종 썼다.

 사연은 이렇다. 1997년 한국에 막 도착한 피터에게 서울살이를 먼저 시작한 미국인 친구가 ‘서울은 이런 곳’이라며 경험담 한 토막을 들려줬다.

 지하철 2호선 어느 역에서 지하철 문이 열리자 중년 여성 한 분이 다급하게 뛰어나오며 문밖에 서있던 친구의 어깨를 세게 쳤다.

 “Excuse me”라는 말을 들을 것으로 기대했던 친구는 이 여성이 뒤도 안 돌아보고 뛰어가자 화가 난 김에 뒤통수에 대고 저도 모르게 외쳤다. “Excuse you!”

 7개월 뒤 그 친구는 “번잡하고 배려심 없는 한국 문화에 적응하기 힘들다”는 말을 남기고 고국행 비행기를 탔다.

 피터가 이 문장을 읊조리거나 떠올리는 데도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지하철에서 발을 밟고도 “미안하다”고 하기는커녕 모른 척 자기 일에 열중하는 사람들을 볼 때, 서있는 승객들에 이리 부딪히고 저리 부딪히면서 빈자리를 향해 일직선으로 달려가는 이들을 볼 때, 다른 승객들이 불쾌해 하건 말건 큰 소리로 전화통화하는 사람들을 볼 때….

 피터는 “목표가 정해지면 주위 상황, 남의 입장은 아랑곳 않는 한국인의 모습에서 결과를 중시하는 한국 사회의 특징을 알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요즘 그는 한국을 달리 보고 있다. 14년 서울살이 동안 공공장소에서 한국인의 매너가 크게 달라져서다. 그는 “해외 여행, 유학, 어학연수를 다녀온 젊은 층이 늘면서 문화도 바뀌는 것 같다”며 “지금 한국 젊은 세대의 매너는 국제사회의 어느 나라와 비교해도 톱 클래스 수준”이라고 말했다. 다만 그는 “50, 60대 어르신들, 그리고 농촌지역은 아직도…”라고 여운을 남겼다.

 그는 즐거운 경험담을 들려줬다. 얼마 전 복사한 물건을 양손 가득 들고 가는데 건물에 들어설 때, 엘리베이터를 탈 때 앞에 가던 젊은이들이 출입구가 ‘쾅’ 닫히지 않도록 일일이 문을 잡아 주더란다. 피터는 “이제 서울에서 ‘Excuse you’보다 ‘Thank you’를 쓸 일이 훨씬 많아지고 있다”고 말한다.

박태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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