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한편 보고 가세나] 52. 도끼사건 (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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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 필자의 인생 역정을 그린 영화 '하류인생'의 한 장면.

1950년대 서울 명동은 지금의 압구정동이나 홍대 앞 같은 곳이었다. 유흥시설이 몰려 있어 약속이 있다든지, 한번 신나게 놀고 싶을 때 가장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장소였다. 반세기 전이었으니, 지금 보면 촌스럽기 그지없는 수준이었다. 유흥업소라 해봐야 나이트클럽 일곱 군데, 스탠드바 99곳에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다방.음식점 등이 고작이었다. 이 손바닥 만한 곳을 놓고 건달 세계는 먹잇감을 앞에 둔 맹수처럼 으르렁거렸다.

내가 '입성'한 50년대 말 명동은 이화룡파의 거점이었다. 이화룡처럼 이북이 고향인 정팔이나 남한 출신인 김두한은 특별한 조직을 만들지 못한 채 공생하는 형국이었다. 이즈음 명동에 눈독을 들이고 본격적으로 집적거리는 세력이 나타났다. 동대문 일대에서 활약하던 이정재파였다.

경기도 이천에서 씨름꾼으로 이름 날렸던 이정재는 당시 동대문상인연합회장 직함을 갖고 있었다. 상인들에게서 회비를 받는 대신 주변 노점상을 정리해주는 일을 했다. 점차 조직원이 늘자 명동을 노리게 된 것이다. 자연히 청계천이 38선 아닌 38선이 됐다. 이화룡파와 이정재파는 상대가 청계천을 넘어오지 못하도록 했다.

특히 명동을 수성(守城)하는 입장이었던 이화룡파는 상대편 조직원이 얼씬하기만 해도 쫓아가서 혼냈다. 청계천 근처에선 두 세력 간 다툼이 하루에도 몇 번씩 일어났다. 하지만 이건 신경전에 불과했다.

마침내 전운이 감도는 사건이 발생했다. 어느 날 검은 지프 7, 8대가 꼬리를 물고 명동 거리에 나타나더니 하얀 가루가 든 병을 바닥에 던지면서 지나갔다. 도로에 불꽃이 팍팍 튀었다. 청산가리였다. 그렇게 유유히 명동을 한 바퀴 돈 지프들은 중부경찰서 근처에 이르러 권총을 '탕탕' 두 발 쏘고는 청계천 너머로 사라졌다. 적진을 향해 무력시위를 한 것이다. 이정재파의 소행이라고 단정할 수밖에 없었다. 보고를 받은 이화룡은 화가 머리끝까지 올랐다. 당장 전 조직원을 식당으로 불러 모았다. "이노무 새끼들, 다 죽이고 오라우!"

그날 밤 군용 지프 15대를 빌려 서울운동장(현 동대문운동장) 앞에 나란히 대기시켰다. 지프 뒤에는 각각 서너명의 조직원이 살기 어린 표정으로 서 있었다. 손에는 낫.도끼.쇠파이프 같은 무기(?)를 들고 있었다. '김 대위'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이가 현장을 총지휘했다. 자정을 기해 일제히 이정재파의 간부를 처치하라는 명령이 내려졌다. 출발 신호가 떨어지자 지프들은 이정재.임화수.유지광 등이 사는 집을 향해 흩어졌다.

그러나 들이닥친 집마다 하나같이 인기척이 없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정재가 살던 종로 4가 뒤편에 모두 모여 있었던 것이다. 정보가 새나간 게 분명했다. 설상가상으로 충정로에 파견된 조직원이 사고를 치고 말았다. 목표물을 찾지 못하자 어찌할 바를 몰라 지프 근처에서 웅성거리고 있다가 지나가던 파출소 순경으로부터 검문을 받았다. "신분증 좀 봅시다." 신경이 곤두서 있던 한 조직원이 "너, 죽고 싶어?"라며 경찰관의 뺨을 때렸다. 놀란 순경이 파출소 쪽으로 도망쳤다. 이를 본 다른 조직원이 양날로 된 손도끼를 그를 향해 던졌다. 다행히 맞지는 않았지만 순경의 고함을 듣고 파출소에 있던 경찰관들이 뛰쳐나왔다. 조직원들은 잽싸게 지프를 타고 빠져나왔다. 하지만 빼도 박도 못하는 증거물을 현장에 남겨둔 꼴이 되고 말았다.

이태원 태흥영화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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