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는 어렵게 배웠지만 후배들은 쉽게 배워야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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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경주-경읍 형제가 대화를 나누고 있다.

뮤지컬 흥행의 보증수표 남경읍(47)-남경주(41) 형제. 이들이 뮤지컬 교육에서도 보증수표가 될까?

한국 뮤지컬의 산 역사, 남씨 형제가 일을 냈다.

서울 명동에 남 뮤지컬 아카데미를 연 것. 남경읍 씨가 원장을, 남경주씨는 뮤지컬 연구소장을 맡았다. 강좌는 뮤지컬 지망생을 선발해 1년간 집중 가르치는 전문인반, 연구소가 주관하는 배우 재교육반, 뮤지컬 매니아들을 위한 일반인반으로 구성된다.

"탭댄스를 배우고 싶어 몇 년간 수소문끝에 한국 최초의 탭댄서 아들이라는 한 후배로부터 배웠어요. 운동화 밑에 망치로 편 콜라병 뚜껑을 붙여 댄스화로 썼죠."(남경읍)

25년전 얘기다.

"지금도 크게 달라진 건 없어요. 뮤지컬 지망생들은 연기, 성악, 재즈, 발레 등 과목별로 각지에 흩어져 있는 학원을 수소문해 다녀요."(남경주)

뮤지컬의 'ㅁ'자도 모르던 시절, 서울예대 연극과에서 춤은 무용과 친구에게, 노래는 혼자서, 그렇게 알음알음 익힌 남경읍씨는 지금은 '한국 뮤지컬의 아버지'로 불리고 있다.

어렵게 배운만큼 후배들은 강사를 찾아 헤매는 일만은 없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배우고 가르치는 것에 대한 욕심도 남달랐다. 그는 서울 관악구에서 10년째 연극계열 대입학원을 운영하고 있다. 88년 계원예고를 시작으로 단국대, 송원대 등에서 강의했던 노하우도 남 뮤지컬 아카데미를 이끌어가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총 40명의 뮤지컬 배우 지망생을 선발해 1년간 밀도있게 가르칠 계획인 전문인반의 과목은 발레, 재즈, 화술, 합창, 제작실습 등으로 구성돼 있다. 남씨 형제 외에 MBC 관현악단의 엄기영 단장, 김문정 음악감독, 뮤지컬 배우 강효성, 황현정, 임춘길씨 등이 강사로 나선다.

뮤지컬 아카데미를 꾸리겠다는 남경주 씨의 몇 년간의 구상은 형제의 브랜드 네임으로 실현됐다 할 수 있다. 임대료 비싼 명동에 300평 공간을 확보해 운영하는 것은 건물주 TS크리에이티브의 몫이다. '빵빵한' 강사진들도 이들 형제를 보고 합류했다.

"강사분들이 원하는 수준의 강사료 다 드리면 저희 망해요. 엄기영 MBC 관현악단장만 해도 참 모시기 힘든 분이에요. 강사료 묻지도 않으시더군요. '알았다. 네가 한다는데'라고만 하셨어요. 저희와 그동안 인연을 맺어온 분들이죠."(남경읍)

경읍씨는 78년 서울예대 졸업 후 서울시립가무단에 들어갔다. 뮤지컬에 뜻을 둔 배우가 할 수 있는 몇 안되는 선택이었다.

"그때 가무단은 합창단보다 노래 못하고 무용단보다 무용못하고 극단보다 연기 못하는 어중이 떠중이 단체라고 얕보는 인식도 있었어요. 오기로 연극, 대한민국 무용제, 송년음악회 합창단 등에 출연하기도 했어요."

6살 연하인 경주씨의 여건은 나은 편이었다. 졸업 후 서울시립가무단을 거쳐 뮤지컬을 전문으로 하는 롯데월드예술극장에 들어갔다. 개관공연 '신비의 거울속으로'는 브로드웨이에서 전문강사를 초빙해 와 1년간 준비 끝에 초연했다. 탭댄스도 거기서 처음 배웠다. 그게 89년의 일이다.

16년이 지난 지금, '뮤지컬 붐'이다.

"시장은 90년대 초반보다 3~10배쯤 불어났지만 배우는 두 배 정도나 늘었을까. 배우는 계속 쓸 수 있는 기계가 아니에요. 충전, 재교육이 절실합니다"(남경주)

"뮤지컬이 주목받는 건 좋은 현상이지만 단기간 준비해 여러 작품을 공연하다보니 작품성도 떨어지고, 상업적 성공도 못하는 경우가 많이 생깁니다. 1년간 무대에 오르는 작품의 15~20%만이 흥행과 작품성 두 가지를 만족시키고 있습니다. 관객들도 눈이 높아져 졸속투자를 금방 알아봐요. 뮤지컬 발전의 과도기라 봅니다. 신인배우 육성, 배우 재교육, 창작뮤지컬 개발 등 내실에 힘쓸 시기입니다"(남경읍)

욕심많은 형제다. "이제 교육에 치중하는 건가? 무대엔 몇 살까지 설 작정인가?"라고 묻자 남경주씨는 "죽을때까지"라고 단언했다. "무대에서 가장 강한 동작은 아무 동작도 안 하는 것, 무대에서 가장 강한 대사는 아무 말도 안 하는 사이에요. 긴장과 이완을 이해하면 60세 넘어서도 원숙한 춤을 출 수 있죠"라고 형이 받았다.

경주씨는 "후배들과 워크숍을 통해 배우로서 재개발을 하고 나아가 창작 뮤지컬을 발굴하고 싶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장기적으로는 '남 뮤지컬 컴퍼니'를 설립하는 계획도 구상하고 있습니다"라고 밝혔다.

28일 배우 등 뮤지컬계 인사 150여명이 모여 뮤지컬 '아이 러브 유' 명장면 공연 등 개관행사를 가질 예정이며, 강의는 다음달 7일부터 시작한다. (02-775-7712)

권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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