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중국 최고지도부에 알현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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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북한과 중국이 김정일(68) 국방위원장의 후계자인 셋째 아들 김정은(26)의 전면 등장을 계기로 밀착 분위기로 가고 있다. 11일에는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이 “김 위원장과 북한의 새 지도부가 편리한 시간에 중국을 방문해 달라”는 뜻을 북한에 전달했다. 북한 노동당 창건 65주년 행사 축하 사절단장으로 평양에 체류 중인 저우융캉(周永康) 중국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을 통해서다. 평양의 ‘새 지도부’는 지난달 28일 노동당 3차 대표자회에서 선출된 정치국 상무위원회와 당 중앙군사위 멤버 등을 의미한다. 여기에는 당연히 군사위 부위원장 직을 얻은 김정은도 포함된다. 후진타오 주석이 김정은을 초청했다는 얘기다.

이를 두고 우리 정부 당국과 전문가들은 중국의 지도부가 김정은 후계체제를 인정하겠다는 확실한 의사표현을 한 것이라고 풀이한다. 윤덕민 외교안보연구원 교수는 “초청 메시지는 북·중 최고위급 간에 의례적으로 있어왔으나 이번의 경우 김정은을 겨냥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세습체제의 강행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난 여론에도 불구하고 중국이 사회주의 초유의 부자간 3대 세습을 공인하고 나선 것이란 풀이다. 이조원 중앙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김정일의 건강이상으로 인한 급변사태 등 혼란을 막기 위해서는 주저 없이 후계체제를 인정하는 게 중국의 이익에 유리하다는 판단을 후진타오 지도부가 내렸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번 초청은 10일 북한 노동당 창건 65주년 행사를 앞두고 중국이 전례 없이 강한 대북 친선 무드를 조성하면서 예견됐다. 9일 후 주석은 김 위원장에게 보낸 축전에서 “중·조 우의가 대대로 전해져 내려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국의 적극적 대북 접근에 김정일도 화답하고 나섰다. 그는 저우 상무위원에게 “본인을 비롯한 중앙 영도집단 구성원들은 중국에 자주 가보고 싶다”고 말했다. 후계자 김정은을 중국 고위층에 선보이는 ‘알현식’ 행차를 예고한 셈이다. 김정일은 중국의 초청에 고무된 듯 “당 대표자회가 성공적으로 개최돼 젊고 실력 있는 동지들을 중앙 영도집단으로 받아들였다”고 강조했다. 김정은 후계체제 출범에 대한 만족감을 드러내려는 언급이다. 두 사람의 대화에는 김정은 후계체제의 후견인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진 김정일의 매제 장성택 노동당 부장이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김 위원장과 저우 상무위원 간의 대화 내용을 상세히 전했다. 하지만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오찬 사실 외에는 공개하지 않았다. 정부 당국자는 “김정일의 언급이 자칫 대중 굴종적인 것으로 주민들에게 비춰질 것을 우려한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김 위원장도 후 주석의 평양 방문을 초청했다. 이에 따라 조만간 북·중 최고위급 교차방문이 성사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5월과 8월 김 위원장이 잇따라 중국을 방문했다는 점을 고려할 때 먼저 후 주석이 방북한 뒤 김정일·김정은 부자를 포함한 북한 지도부가 베이징을 찾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조원 교수는 “한·미 동맹 관계가 더없이 좋다는 평가가 나오는 상황에서 북한과 중국이 이에 대응할 밀월관계를 과시하고 있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이영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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