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아이유'도 열창….노래하는 택시 방송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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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길동 사거리구요. 퇴근 시간이라 차가 많이 막히고 있네요~” “아~ 지금 창밖으로 지나가는 이등병의 어깨가 축 쳐져있네요. 힘내세요! 시간은 흐르니깐요~” “~~님, 오늘따라 유난히 짬뽕이 생각난다구요? 그렇다면 이 노래는 어떠신가요! 루이스의 '중화반점' 들려드립니다~”

마치 라디오를 틀어놓은 듯, 쉴 새 없이 이야기하는 이 사람. DJ는 아니지만 BJ로 불린다. 인터넷방송 사이트인 아프리카TV에서 활동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 BJ(Broadcasting Jacky). 화상캠과 헤드셋 마이크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든 방송을 할 수 있다는 간편함 덕분에 많은 이들이 도전하는 '직업' 중 하나로 불린다.

택시기사 임이택(40)씨는 '보통 BJ'가 아니다. 일반적으로 자신의 집에서 방송을 하는 다른 BJ와 달리, 임씨의 방송은 바로 '달리는 택시' 안에서 이뤄진다. 차량 안에 설치된 컴퓨터와 화상캠으로 진행되는 'E-택시 라이브 방송(http://afreeca.com/dlxor70)'은 애청자가 6000명에 달할 정도로 인기프로이다. 팬클럽 회원수는 600명을 훌쩍 넘어섰다.

임씨가 방송을 시작하자 그를 기다리던 네티즌들이 줄지어 접속했다. 임씨는 헤드셋 마이크를 통해 네티즌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채팅 창'에는 네티즌들의 글이 실시간으로 올라오고 있었다.

인터넷 방송을 시작한지 8개월째. 사실 임씨는 택시 경력 8년차의 베테랑이다. 창밖만 쳐다보는 손님들부터, 경계심 가득한 손님들까지. 이것이 그가 8년동안 보아온 모습이었다. 이에 임씨가 선택한 것이 바로 '인터넷 방송'. 택시 안의 상황을 생중계하며 택시의 긍정적 이미지 제고와 손님과의 유대관계를 조성하기 위함이었다.

10명 중에 8명의 손님은 적극적으로 방송에 임하는 등 반응은 호의적이었다. 하지만 임씨는 이 자리에 오기까지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고 말했다. 그는 "'안전운전'에 대한 우려가 있어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이 필요했다 " 며 "고민 끝에 방송을 도와줄 수 있는 '매니저'를 뽑았다"고 말했다. '매니저'는 원격제어 프로그램을 통해 운전중인 임씨가 장비에 손을 대지 않아도 원활한 방송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임씨는 얼마 전 아주 특별한 손님을 태웠다. 가수 '아이유'가 그의 택시에 탑승한 것이다. 임씨는 아이유와 함께 그녀의 히트곡 '잔소리'를 열창했고, 그 모습은 인터넷으로 생중계되었다. 이후, '아이유 택시'로 불리며 포털사이트 검색어 1위를 하는 등 유명세를 치렀다. 이에 홍대의 한 인디밴드로부터 "우리도 방송에 출연시켜 달라"는 제안까지 받았다.

임씨의 말에 따르면 이 택시에 타는 손님들은 세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첫번째, '신세 한탄형'. 40-50대 손님들이 주로 이 유형에 속한다. "아이고~ 내가 옛날엔 얼마나 잘 나갔는데... 세월이 너무 빨라~" 마이크를 잡고 하소연을 하다 보면 어느새 도착지에 다다른다.

두번째, '무아지경'형. '노래 한곡 부르라'는 기사의 말에 못 이기는 척 마이크를 잡고서는 두 곡, 세 곡까지 열창하는 사람을 말한다. 임씨는 "이런 손님을 만나면 아예 갓길에 차를 세우고 '함께' 무아지경으로 즐긴다"고 말했다.

세번째, '주객전도'형. 말 그대로 주인과 손님이 바뀌어버리는 상황이다. 낯선 택시 안 모습에 얼떨떨해 하다가도 금세 적응해 직접 방송을 진행할 정도로 적극적인 손님들이 있다. 이런 손님들은 내릴 때 꼭 하는 말이 있다. "아저씨 명함주세요~" 다음에 또 타겠다는 말이다.

임씨는 "늦은 밤까지 계속되는 방송은 손님의 안전은 물론 운전자의 고충까지 그대로 전달해준다."며 "택시가 더이상 단순한 이동수단이 아닌 소통의 공간으로 변화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글=류혜은 작가·영상=손진석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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