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사람들 왜 35m 하늘에 달려있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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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마른 하늘에 날벼락? 아니었다. 가을 저녁 하늘에 인간이 대롱대롱 매달렸다.

서울 불꽃 축제로 100만 명이 넘는 인파가 몰렸던 9일 오후 서울 여의도 한강 공원. 불꽃만 열기가 높았던 건 아니었다. 불꽃 축제가 펼쳐진 공간으로부터 2㎞ 남짓 떨어진, ‘너른 들판’이라 불리는 야외 공간에서도 이색적인 풍경이 벌어졌다. 바로 초대형 크레인에 8명의 사람들이 매달려 아찔한 묘기를 펼친 것.

잔디에 철퍼덕 앉아 파란 하늘을 멍하니 쳐다보고 있던 시민들은 순식간에 펼쳐진 짜릿한 곡예에 “아-”하는 탄성을 잇따라 질렀다. 아파트 공사장에서나 볼 수 있던 대형 크레인 주변이 갑작스레 신명 나는 축제의 장으로 탈바꿈하는 순간이었다.

‘인간 모빌’ 8명이 하늘에서 곡예를 하는 동안 농악대는 땅에서 분위기를 달구었다. 이들은 10일 반포 한강공원에서도 묘기를 보여줬다. [서울문화재단 제공]

◆빌딩과 대화하다=이날 공연의 제목은 ‘인간 모빌’. 대형 크레인에 매달린 모습이 진짜 모빌 같았다. ‘트랑스 엑스프레스’라는 프랑스 거리예술극단의 작품이자, 하이서울 페스티벌의 폐막 공연이었다.

매달린 사람은 모두 8명이었다. 그 중 7명이 “둥둥둥” 북을 치며 분위기를 고조시키면, 맨 꼭대기에 매달린 여성 곡예사가 떨어질 듯 말 듯, 관객의 입술을 바짝 마르게 했다. 최고 높이는 35m가량. 관객의 눈 바로 위에서 펼쳐지기에 긴장감은 배가됐다.

왜 이런 위험한 곡예를 할까. 연출가 질 호드(Gilles Rhode)의 대답은 인상적이었다. “첫째, 위로 올라가야 많은 사람이 모일 수 있다. 둘째 ,야외에서 하면 무료다. 공연은 돈 많은 사람만 볼 수 있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싶었다. 셋째, 맑은 하늘을 쳐다볼 때 관객의 마음은 동심으로 돌아간다. 넷째, 도시 문명의 한복판에서, 우린 높다란 빌딩들과 대화를 나누고 싶었다.”

밤이 깊어가면서 여의도 주변 건물에 공중 곡예의 모습이 조명으로 비춰졌다. 주부 이영주(43)씨는 “신기했고, 어질어질하면서도 그윽한 조명까지 더해져 묘한 느낌을 주었다. 다음에 아이들과 꼭 오겠다”고 말했다.

◆“동춘을 살려냈다”=올 하이서울 페스티벌의 주제는 ‘넌버벌 퍼포먼스(비언어극).’ 12개국 70여개 단체가 참여했다.

특히 존폐 위기에 몰렸던, 동춘 서커스단은 부활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1000석 남짓한 ‘파랑 극장’에서의 사흘간 공연은 관객의 열띤 환호와 함께 뜨거웠다. 전회 매진을 기록했다.

박세환 단장은 “두 시간 전부터 텐트 극장 주변에 길게 선 줄을 보곤 목이 매었다”고 말했다. “이렇게 평평한 바닥에서, 다칠지 모른다는 걱정 없이 묘기를 한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서울 한복판에서 공연한 건 처음이다. 좋은 시설만 있으면, 좋은 관객만 있으면, 동춘도 경쟁력이 있음을 우리 스스로 알게 됐다”며 감격해 했다.

◆일상에 스며들다=8회째를 맞은 하이서울 페스티벌은 어느새 서울의 대표 축제로 브랜드화에 성공했다. 1일 아트 불꽃쇼 ‘첫 눈에 반하다’를 시작으로 10일까지 페스티벌을 찾은 이는 대략 190만여 명. 이중 해외 관광객도 15%에 이른다. 예술축제와 관광축제를 적절하게 혼합시켜 서울만의 독특한 색깔을 낸 게 축제의 성공 요인으로 꼽힌다.

유경숙 세계축제연구소장은 “공연 예술은 지금껏 늘 극장 안에만 갇혀 있었다. 하이서울 페스티벌은 이를 밖으로 끌어냈다. 권위적으로 여겨졌던 공연 예술을 생활 속에서 즐기게 만들었다는 점이 하이서울 페스티벌의 최대 덕목”이라고 평가했다.

최민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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