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민미술관서 '동북아 3국 목판화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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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 한국 담백하고

▶ 일본 강렬하고

▶ 중국 투쟁적인

나무판을 깎아 여러 장의 글씨와 그림을 밀어내는 목판화는 동양에서 꽃핀 생활미술이었다. 고려시대에 판각한 해인사의 팔만대장경은 그 대표작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18일 서울 세종로 일민미술관에서 막을 올린 'Red Blossom(붉은 꽃)-동북아 3국 현대목판화'전은 한국.중국.일본 세 나라의 빛나는 목판 전통을 견주어보는 자리다.

관람객은 우선 '특별전-한국의 고판화'전이 열리고 있는 1층 전시장에서 숨을 잠시 멈춘다. 어둑한 실내에서 빛나는 우리 옛 판화 때문이다. '유마힐소설경 변상도''대방광불화엄경 변상도'등 고려시대 불교서적의 판화는 700여 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그 정교함과 미감이 보는 이 입을 벌어지게 만든다. 1840년대에 새긴 '수선전도 목판'은 그대로 한 점의 조각처럼 아름답다. 2층 전시장으로 들어서면 울긋불긋 강렬한 색과 형태가 사뭇 다른 땅에 온 듯 눈을 어지럽힌다. 일본과 중국 작가 12명의 현대 판화 모음이다. 우리 것과 몹시 다르다. 강하고 무섭다. 서양 인상주의 미술에 영향을 끼쳤던 일본의 우키요에(浮世繪), 대중의 투쟁 속에 성장한 중국의 신흥판화의 자취를 엿볼 수 있다. 민족의 고유 미감을 그대로 드러내는 목판의 나무 질감이 생생하다.

이상국.김상구.홍선웅.김준권.류연복.정비파.임영재.이인애씨 등 12명의 한국 작가가 작품을 낸 3층 전시장은 2층에 비해 담백하고 고졸하다. 1980년대 민중미술의 격렬한 현장을 거치고 나서 앙금을 가라앉힌 듯한 관조의 모습이 비친다. 자연으로 돌아가 산과 바다에 몸을 기댄 화가의 마음이 우리 속으로 들어온다.

전시를 기획한 김희령 수석큐레이터는 "세 나라의 목판화 미술을 21세기의 동북아 화단 교류를 위한 새로운 시작으로 삼고자 하는 뜻을 담았다"고 밝혔다. 3월 11일 오후 1시 30분에는 동아미디어센터 9층 강의실에서 이태호 명지대 교수가 '한국 목판화의 시대적 흐름'을 주제로 강연한다. 4월 3일까지. 02-2020-2055.

정재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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