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동 18층 소화전 버튼 누르자 컴퓨터엔 18층 단면도 떠 올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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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호 01면

1일 발생한 부산 해운대 38층 주상복합건물 화재를 계기로 ‘초고층빌딩 화재 위험성’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잠실 제2롯데월드를 포함한 100층이 넘는 건물 신축이 줄을 잇고, 서울 도심의 재건축 아파트가 30층 이상인 것들이 많아 초고층빌딩 화재를 남의 일로만 여길 수 없기 때문이다. 중앙SUNDAY는 7일 서울시 소방재난본부와 함께 국내 초고층 주상복합아파트의 대명사인 강남 도곡동 ‘타워팰리스’의 방재(防災)시스템을 현장 점검했다. 8일에는 한·미·일 3개국의 방재전문가를 본사로 초청, 초고층 빌딩의 화재 위험성에 대한 ‘이슈 토론’을 진행했다.

69층 강남 타워팰리스 소방안전점검 동행 취재

7일 오전 서울 도곡동 타워팰리스 1차 정문. 서울시 소방재난본부와 강남소방서 검사지도팀의 소형 차량 두 대가 들어섰다. 안내소에 소방점검팀의 신분증을 보여주자 곧바로 건물 안쪽에서 젊은 직원들이 달려 나왔다. 주차장을 지나 ‘타워팰리스 생활지원센터’ 앞에 차를 댔다. 센터에 들어서자 한 직원이 표정 없이 방문 목적을 물었다.
한 달여 앞으로 다가온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앞두고 시내 초고층빌딩에 대한 특별 안전점검을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하자 그제야 소방시설 안내를 시작했다. 관리사무소장은 동행한 기자를 연신 바라보며 카메라는 물론 취재수첩조차 꺼내지 못하게 했다. 그는 “2002년 타워팰리스 입주 이래 취재기자가 직접 들어온 것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센터를 나와 지하 1층 ‘방재센터’로 향했다. 키가 1m90㎝가 넘을 것 같은 거구의 남자가 안내를 위해 동행했다.

철문을 열고 들어선 방재센터 입구엔 방화복과 공기탱크·방독면·헬멧을 포함한 개인소방장비 10벌이 잘 개어져 있다. 타워팰리스 1차 단지를 담당하는 전담 방재팀원들의 장비다. 동행한 소방재난본부 서순탁 예방팀장은 “우리 소방서 장비와 똑같다”고 말했다. 20평 남짓한 방재센터는 ‘지하철 종합상황실’ 같았다. 한쪽 벽면은 아파트 구석구석을 비추는 폐쇄회로TV(CCTV) 모니터들이 가득 차 있다.

‘화재수신반’이라 이름 붙은 다른 쪽 벽면은 타워팰리스 1차 A·B·C·D 4개 동의 모습이 그려져 있고, 각 동·층·호별로 발광다이오드(LED) 전구가 달려 있다. 앞쪽 책상에는 ‘수신반 모니터’라 쓰인 컴퓨터 모니터가 놓여있다.

강남소방서 점검팀원 중 한 명이 방재센터를 빠져나갔다. 방재시스템의 작동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5분 뒤, 방재센터 내에 요란한 사이렌 소리와 함께 경광등이 번쩍였다. 벽면 화재수신반에 표시된 B동 18층 LED에 빨간색 불이 들어오고, 컴퓨터 모니터에는 18층의 구체적인 단면도가 나타났다. 18층 동쪽 구석의 소화전 쪽이 붉게 표시됐다. 소방서 점검팀원이 18층까지 올라가 소화전 버튼을 누른 것이다. ‘정상 작동’이다. 잠시 뒤 다시 사이렌 소리와 함께 경광등이 번쩍였다.

이번엔 스프링클러다. 18층에 올라간 점검팀원이 서쪽 구석 복도 쪽의 스프링클러 시험밸브를 열자, 방재센터 컴퓨터 모니터에 해당 지역의 스프링클러가 붉게 표시됐다.
안내를 맡은 직원은 “사고 상황을 실시간으로 모니터하고 있기 때문에 초기에 진압할 수 있다”며 “경보가 들어오면 3분 안에 현장으로 출동하는 연습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화재 모니터링과 출동은 이곳 방재팀의 임무다. 팀원 5명이 하루 3교대 하면서 항상 3명이 상주 근무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갖춰놨다. 타워팰리스와 같은 방재전담인력은 관련 법규상 의무사항이 아니다. 소방법에는 각 빌딩에 한 명의 ‘방화관리자’만 두면 된다.

타워팰리스에서는 실제 화재가 발생하면 방재팀뿐 아니라 전기팀·설비팀 직원들까지 출동팀으로 구성된다. 안내 직원은 “평소에 비상상황을 가정해 출동 훈련을 수시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부산 화재 외벽 탓 큰데 알루미늄 패널 종류 묻자 “모른다”

강남소방서 김주호 검사지도팀장은 “타워팰리스의 방재센터와 방재팀이 전담 소방파출소 역할을 하는 셈”이라며 “이 정도면 국내 최고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지하 방재센터를 나와 B동 건물로 올라갔다. 6층에 도착하니 ‘스카이 가든’이란 공간이 나왔다. 창가에 있는 10여 평 넓이의 공간인데 위쪽으로 4개 층이 터져있다. 평소에는 주민들이 가끔 의자를 가지고 나와 창밖을 내다보고 쉬는 휴식 공간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게 타워팰리스 측의 설명이다. 타워팰리스 초기 안내 책자에는 ‘하늘 정원(sky garden)’이 고층부 주민을 위한 정원공간으로 설계된 것으로 돼 있다. 책자 사진에는 나무 등 각종 식물과 벤치가 있는 하늘정원의 모습이 나왔다.

안내 직원은 “4~5개 층마다 스카이 가든이 하나씩 마련돼 있다”며 “불이 나면 스카이 가든과 연결된 배연창(연기를 빼는 창문)이 자동으로 열려 건물 외부로 연기가 빠져나가게 돼 있다”고 말했다. 방재시설 역할을 한다는 설명이다.

안전점검팀은 스카이 가든의 역할에 의문을 제기했다. 소방재난본부 서순탁 예방팀장은 “배연시설로 보기에는 너무 크고 비효율적이다. 텅 빈 장소이지만 불이 났을 때 주민들이 이곳을 임시 대피 공간으로 사용한다면 아주 위험하다”며 “주민들이 오해하지 않도록 ‘이곳은 대피 공간이 아닙니다’와 같은 안내 문구를 써놔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자 황장전 관리사무소장은 “정식 대피 공간은 아니지만 각 동마다 30층에 30평 규모의 ‘옥외 광장’이 있다. 불이 나면 계단을 통해 아래로 내려오는 게 우선이지만, 불가피할 경우 옥외광장을 임시 중간 대피 공간으로 사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황 소장은 “다른 층의 스카이 가든에는 나무와 식물들이 있다”고 덧붙였다. 타워팰리스는 초고층이지만 별도의 공식 대피 공간은 없다. 지난해 말 개정된 건축법시행령에 따르면 50층 이상의 초고층 건물에는 30층마다 ‘긴급대피용 피난안전구역’을 설치해야 한다. 타워팰리스는 법 개정 전에 만든 건물이기 때문에 개정 건축법 시행령의 적용 대상이 아니다.

69층 옥상으로 올라갔다. H자가 그려진 하얀 원이 눈에 들어왔다. 헬리포트다. 타워팰리스 맞은편 동이 손에 잡힐 듯 서있다. 타워팰리스의 외벽은 유리와 알루미늄 패널로 돼 있었다. 1일 화재가 난 부산 해운대의 고층아파트 외벽도 알루미늄 패널과 유리였다.

점검팀이 “타워팰리스 외벽의 알루미늄 패널이 어떤 종류냐”고 물었다. 담당 직원은 “아직 파악을 못 했다”며 “며칠 전 시공사에 문의를 했지만, 아직까지 답이 없다. 당시 건설을 맡았던 인력들이 대부분 퇴사해 자료를 찾는 데 시간이 걸리는 모양”이라고 답했다.

부산 해운대 고층 주상복합아파트 화재 이후 이곳의 일부 주민도 동요가 있었다고 한다. 황 소장은 “최근 들어 화재를 걱정하는 주민들의 문의가 꽤 있어 안내방송과 함께 비상시 대피 요령 등을 담은 안내문을 돌렸다”고 말했다.

겨울철을 앞두고 실시하는 주민 피난 훈련도 앞당길 예정이다. 타워팰리스의 구조에 맞는 구체적 주민 대피 매뉴얼도 새로 제작 중이다. 안내를 맡은 직원은 “타워팰리스 입주 초기에는 매 분기마다 주민 대피 훈련을 했다는데 근년 들어서는 연간 한 차례 겨울철을 앞두고 화재예방 및 대피 교육을 한다”고 말했다. 그는 “그간 사고가 없었고 참여도 저조해 주민들이 직접 참여하는 대피훈련은 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황 소장은 초고층빌딩에 어울리는 보다 강화된 방재훈련에 대한 아쉬움을 표시했다. 그는 “강남소방서와 타워팰리스 방재팀이 함께 합동훈련을 해봤으면 좋겠다. 인천 송도에 생긴 초고층 화재 전담반이 많은 매뉴얼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것도 공유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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