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꼬리 무는 가족 3대의 수다 그 일상 속에 담긴 푸근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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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구경꾼들
윤성희 지음, 문학동네
312쪽, 1만원

등단 10년 만에 첫 장편소설 『구경꾼들』을 출간한 소설가 윤성희씨. [중앙포토]

소설에서 강렬한 감동이나 짜릿한 긴장보다 잔잔한 공감의 기쁨을 얻길 원하는 독자가 있다면 마춤한 책일 것 같다. 1999년 등단했지만 그동안 단편들만 발표했던 윤성희(37)씨의 첫 장편소설이다. 분량만 장편으로 늘어난 듯 윤씨 소설의 색깔과 향기는 여전하다. 별게 없는 소소한 일상을 시시콜콜 주워섬기는 데도 읽다 보면 슬며시 마음이 따뜻해지는가 하면 미소도 짓게 된다. 서너 행씩 건너 뛰며 소설 속 사건을 정신 없이 따라가는 데 익숙한 독자라면 소설 첫 머리에서 자칫 당황할 수 있다. 단편들도 마찬가지였지만 이번 소설도 천천히 읽어야 한다. 보통 보다는 좀 느린 윤씨 소설의 호흡에 적응해야 비로소 제 맛을 느낄 수 있다.

소설은 마당 있는 이층집에 사는 3대 여덟 명, 대가족의 일대기다. 등장인물들 부터가 요즘 흔히 볼 수 있는 부류가 아니다. 윤씨는 첫 장면부터 읽는 이를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꿈의 궁전’이라는 이름의 모텔 402호실. 대낮에 남녀가 들었는데, 소설의 화자인 ‘나’는 둘을 아버지, 어머니라고 부른다. 헌데 나는 아직 어머니 뱃속에서 잉태되지도 않은 상태다. 사실주의적 글쓰기의 규칙쯤, 윤씨는 슬쩍 제쳐 둔다. 재미 있는 건 미래의 부모 사이의 대화가 대낮 모텔 투숙객 치고는 지나치게 건전하다는 점이다. 아버지는 느닷없이 어렸을 때 아이스박스에 갇혔다 구출된 얘기를 꺼내더니 두 남동생과 여동생을 차례로 소개한다. 그러더니 누가 제일 공부를 잘했을 것 같으냐는 문제를 내고는, 답이 궁금하면 동생들한테 직접 물어보라고 한다. 어딘지 대낮 모텔에 어울리지 않는 엉뚱한 프로포즈다.

살짝 엉뚱하기는 다른 가족들도 마찬가지다. 내가 다쳐 이마를 꿰메자 손자 사랑이 끔찍한 할아버지, 자신의 잘못이 아닌데도 “미안하다”며 마루바닥에 주저앉아 엉엉 운다.

정작 윤씨 소설의 매력은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특유의 수다에서 온다. 그 수다를 따라가다 보면 순박하고 유순한 인물들의 인간성에 마음이 푸근해진다.

윤씨는 이번 소설에서 작심하고 일상을 복원하려 한 듯 하다. 소설 뒤 작가의 말에서 ‘삶은 언제나 사람을 넘어선다’며 그렇기 때문에 자신은 최선을 다해 삶의 다양한 양상을 쳐다보기로 작정했다고 밝힌다. 섯불리 소설적으로 삶을 재단하거나 재구성하려 하지 않고 건조한 필터처럼 옮기려고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소설 제목이 『구경꾼들』일 게다. 시시콜콜한 일상 속에 숨은 인간적인 따뜻함을 드러내는 게 윤씨 소설의 매력이다.

신준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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