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 이민 100년] 上. '첫 멕시코둥이' 100세 고흥룡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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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어서 오세요." 악수하는 손아귀 힘이 보통이 아니다. 100살이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았다. 고흥룡(高興龍.사진)옹. 올해로 100년이 되는 멕시코 한인 이주 역사의 산증인이다. 1세대 1033명의 한인 후손 가운데 최고령자다. 고옹은 한국말을 용케도 잊지 않고 있었다.

그는 아버지 세대가 만든 농장의 글방에서 주는 상을 받기 위해 열심히 공부했다. 또 어머니가 유산 1호로 남겨준 성경책을 읽고 또 읽었다. 한글을 잊지 않기 위해 무던히 애썼다고 한다. 유카탄 메리다에 있는 그의 집은 과거 이 지역의 한글 학교로 통했다. 후손에게 한글을 가르쳤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젠 자신도 늙었고, 한글을 배우고 싶어하는 아이도 없다고 했다.

"부모님이 여기 온 지 석달 뒤인 1905년 8월에 태어났지. 부모님은 가시밭(에네켄 지칭)에서 종일 살았지. 알지, 그 가시가 얼마나 센지. 다리와 손은 늘 상처 투성이였어."

고된 일에 아버지 고희민씨는 가족을 데리고 야반도주를 시도했다가 붙잡혀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에네켄 농장에서 일곱 자식을 낳았던 어머니는 1989년 104세의 나이로 돌아가셨다. 아순시온 코로나 김이란 이름을 갖고 있는 고옹은 대장간에서 양철로 그릇을 만들며 살았다.

고옹은 올해 환갑으로 미혼인 셋째 딸 마르타와 같이 살고 있다. 고옹은 "돼지처럼" 자식을 열둘(아들.딸 6명씩)이나 낳았다며 멋적게 웃었다. 현지인 부인은 2000년 87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한국에 가고 싶지 않으냐는 질문에 "돈이 있어야 가지. (한국 가려면) 비싸지?"라고 되묻는 그의 말에선 깊은 향수가 배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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