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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화로 강남 아파트를 산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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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위안화 가치가 치솟으면서 홍콩에선 집집마다 위안화 예금통장 한두 개는 꿰차는 게 유행이다. 위안화 절상까지 겨냥한 재테크다. 홍콩의 위안화 예금 잔액은 매월 10% 이상 증가하는 등 가파른 상승세다. 대접 받는 위안화는 지하 자금시장을 통해 들어와 고공행진하고 있는 홍콩의 부동산 시장을 받친다. 올해 상반기 홍콩의 부동산은 1997년 IMF(국제통화기금) 사태 이전 시세를 회복했다.

위안화 가치의 적정성 여부를 따지며 미국과 중국이 ‘환율전쟁’을 벌이고 있는 와중에도 위안화는 야금야금 국제화의 저변을 넓혀가고 있다. 중국 내 무역 결제 허용 지역을 넓히고 동남아 국가들에 이어 한국 등으로 대상 국가를 확대하고 있다. 위안화 펀드 상품에 이어 채권 시장의 빗장마저 풀었다. 이제 외국 중앙은행과 금융회사가 중국 채권에 투자할 수 있게 됐다. 무역 결제로 쌓이는 위안화를 굴릴 수 있도록 규제를 푼 것이다. 위안화 보유 욕구를 키워 유통량을 늘리려는 노림수다.

중국의 야심찬 행보에 동남아가 먼저 화답했다. 말레이시아 중앙은행이 최근 위안화 채권을 매입하기 시작했고 다른 동남아 국가들도 이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고 한다.

이렇게 급물살을 타고 있는 위안화 국제화 흐름에서 기회를 잡고 싶어 홍콩은 몸이 달아 있다. 차세대 성장엔진인 위안화 국제 거래를 놓치고는 미래가 없다는 비장감마저 느껴진다. 요즘 홍콩 금융가에선 ‘홍콩달러의 위안화화(化)’라는 말이 화두다. ‘홍콩의 법정화폐를 위안화로 바꾸자’는 말인데 중국 경제의 활력을 최대한 끌어당기기 위한 전략적 계산이 깔려 있다. 문제는 통화 주권을 반납해야 하기 때문에 홍콩의 금융통화 정책이 중국 인민은행에 종속될 수 있다는 점이다. ‘기회냐 위험이냐’를 놓고 딜레마에 빠진 것이다.

지난해 한·중 교역량이 1400억 달러에 달하고 대중(對中) 무역 의존도가 20%를 넘었는데, 한국이라고 이런 딜레마를 비켜가란 법 없다. 중국이 주저 없이 힘을 과시하며 댜오위다오(釣魚島·일본명 센가쿠열도)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보고 ‘독도가 동해에 있는 게 천만다행’이라는 우스갯소리도 나온다. 댜오위다오는 정치 문제였다. 위안화는 경제 문제다. 돈은 수익률을 좇는다. 민족도 국가도 다음 문제다. 위안화 무역 결제 비중이 늘어가고 대중 경제 의존도가 심화되면 홍콩처럼 돈값 나가는 위안화로 강남 아파트를 사고팔 날이 올지도 모른다. 우리 증시·부동산에 위안화가 풀리고 우리의 금리 결정에 그들의 입김이 작용하는 날이 올까 두렵다.

정용환 홍콩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