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들 PB시장 놓고 치열한 경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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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한 시중은행은 지난해 100억원대 재산가인 VIP 고객에게 상속 계획을 짜줬다가 낭패를 당했다. 상속이 끝나자 다른 은행의 주거래 고객인 자녀가 돈을 모두 옮겨갔기 때문이다. 세무.부동산 전문가들까지 동원해 일주일간 밤샘 작업을 한 노력이 헛수고가 돼버렸다. 이 은행은 이후 부자고객의 자녀와 접촉을 늘리기 위한 종합 계획을 세우고 있다.

프라이빗뱅킹(PB) 시장을 두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시중은행들이 최근 부자고객의 2세 관리에 부쩍 힘을 쏟고 있다.

부자고객층의 나이가 많은 편이라는 게 가장 큰 이유다. 한 은행이 최근 PB 고객을 조사한 결과 평균 연령이 60세로 나타났다.

또 60대 이상 고객의 자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전체의 70% 수준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자녀 연령층은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이 많았다. 상속이나 증여를 통해 자녀 세대로 금융자산이 이동할 가능성이 커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은행들은 이에 따라 자녀의 주관심사인 취업과 결혼.교육 관련 서비스를 집중적으로 개발하고 있다.

우리은행은 지난달 두 차례에 걸쳐 자체 연수원에서 PB 고객의 대학생 자녀를 대상으로 '이미지앤드프리젠테이션캠프'를 열었다. 취업에 대비해 긍정적 이미지를 만들 수 있는 자기 표현.발표 기법과 메이크업.피부관리.댄스 특강 등이 사흘간 진행됐다. 신한은행은 지난달 21일부터 PB 고객 자녀를 중매해주는 커플매니징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담당 PB가 자녀의 연령.성격 등에 맞춰 다른 고객 자녀와의 만남을 주선하고 결혼 때까지 지속적으로 관리해주는 프로그램이다. "해외에 나가 있는 자녀가 많아지면서 혼기를 놓치는 경우가 적지 않아 생각보다 수요가 많다"는 게 은행 측의 설명이다.

중매 서비스를 가장 먼저 도입한 하나은행은 고객의 자녀가 결혼할 경우 직원들이 지폐 계수기를 들고 나가 축의금 수납을 대신해준다.

또 PB 고객이 상을 당할 때 외제 장례차를 무료 대여하고 장지까지 에스코트 서비스를 제공해 자녀와의 접촉을 늘리고 있다. 해외 유명 사립 초.중.고교 설명회를 정기적으로 개최해 유학 관련 정보를 제공하고 송금 관련 서비스도 대행한다.

은행들은 또 나이와 취미에 따라 커뮤니티를 형성하게 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커뮤니티 마케팅을 도입하고 있다. 1회성 서비스가 아닌 상시 관리시스템을 갖춰 2세들을 공략하자는 취지다.

신한.조흥은행은 초등학생 자녀를 대상으로 금융 기초이론과 부자들의 소양, 네트워킹 방법, 골프 등 다양한 교육을 하는 '키즈 MBA 프로그램'을 곧 시작한다. 대학생과 직장인 자녀를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도 계획 중이다. 올해 PB 영업점을 다섯 배로 늘릴 예정인 우리은행도 상반기 중 고객 자녀가 참여하는 다양한 커뮤니티를 출범시킨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

나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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