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사 기획] 上. 전공별 분석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4면

본지 조사 결과 적어도 대기업 취업에 있어서는 '이공계 차별'이 아니라 '이공계 선호'가 두드러졌다. 신입사원 가운데 이공계 비율이 높은 곳은 주로 제조업종. 일부 기업은 80~90%를 차지할 정도다. 반면 인문계 출신자의 설 자리는 예상보다 더 좁았다.

<그래픽 크게 보기>

◆ 이공계 활로는 넓어=LG전자의 경우 최근 기획.마케팅 등 전통적인 인문계 출신 영역에서도 이공계 인력이 약진하고 있다. 기업 전략을 총괄하는 전략기획팀장인 박종석 상무도 전자공학 박사다. 삼성전자는 사업별 홍보 담당자도 해당 공학분야 전공자로 충원한다.

LG 관계자는 "디지털가전 같은 고부가가치 상품을 생산하는 업체 입장에서는 경영지원.마케팅분야조차 문과 출신보다 전문성을 갖춘 이공계 인력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최근 이공계 출신이 최고경영자(CEO) 등으로 대거 포진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전경련 이병욱 산업조사실장은 "은행도 기업 여신업무를 담당하는 심사역에 이공대 출신이 각광받는다"고 말했다. 업체의 기술력을 제대로 평가할 사람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대학들도 이공계의 대기업 진출에 적극 나서고 있다. 경북대의 경우 LG전자와 만도 등의 기업들이 요구하는 공학 전문지식을 교과과정에 도입하는 산학협동 혹은 주문식 교육을 한다. 서울산업대 등 30여개 대학은 기업 현장실습을 학점으로 인정해주기도 한다.

▶ 삼성전자가 지난달 31일 서강대에서 이공계 석.박사 인력을 대상으로 개별 채용상담을 하고 있다.최정동 기자

올해부터는 공공기관과 공기업에 '이공계 채용목표제'가 도입돼 이공계의 취업 통로는 더욱 넓어진다. 이에따라 공공기관과 공기업 신입사원 중 이공계가 차지하는 비율이 평균 10%포인트 더 늘어나는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상하고 있다.

따라서 상대적으로 인문계 출신의 입사는 더 어렵게 된다. 물론 전체 채용 인원을 늘리면 큰 문제는 없다. 하지만 공기업 인사 담당자들은 올해 채용 인원을 예년 수준으로 유지하거나 감축할 것이라고 답변했다.

◆ 설 자리 좁아지는 인문계=입사자 중 상경계 비율(17.7%)은 전체 졸업자에서 차지하는 비율(14.9%)보다 다소 높아 사정이 나았다. 그러나 상경계를 제외한 나머지 인문계는 취업난을 여실히 드러낸다. 어문.인문계의 경우 입사자 비율은 6%대에 불과한데 졸업자 비율은 15%에 가깝다. 사회과학계도 2.9%(입사자)와 7.8%(졸업자)로 큰 차이를 보인다.

인사 전문가들은 앞으로 인문계 출신자가 갈 수 있는 일자리가 더 줄어들 것으로 보고 있다. 1997~2002년 30대 대기업과 공기업에서 33만개의 일자리가 줄었는데, 금융업종 등 문과계통에서 감소 폭이 컸다. 노동연구원 정인수 선임연구위원은 "한국의 산업구조가 기술집약산업 중심으로 급변해 사무직 수요는 줄고 이공계 수요는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전망했다.

인사 담당자들은 "인문계 출신자들은 차별화한 전문성을 갖추고 새로운 일자리가 창출되는 영역에 주목해야 한다"고 권고한다.

서울대 경영학과 주우진 교수는 "정부도 양질의 서비스 기업 등을 육성, 새 일자리를 끊임없이 창출해야 인문.사회계의 취업난을 해결할 수 있다"고 주문했다.

◆ 일부 대기업은 구인난=중견 대기업의 인사담당자는 "지방 현장에는 이공계 구인난이 심각하다"고 털어놨다. 우수 이공계 인력을 뽑아도 당사자는 지방 공장 근무보다 서울 본사에서 기획이나 마케팅업무를 원하기 때문이다. 그는 "입사할 때는 '어디서건 성심성의껏 일하겠다'던 공학도들이 1, 2년만 지나면 '마케팅을 하고 싶다'고 한다"면서 "현장을 지키려는 장인정신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건설업체 관계자 역시 "플랜트 건설 부문이 커지면서 기계.전기전자 전공자들이 많이 필요한데도 지원자 자체가 부족하고, 기껏 뽑아도 전자업체로 빠져나간다"고 했다.

제조업체 인사팀 관계자는 "이공계 입사자 70~80%가 중복 합격자여서 이들을 붙드느라 애를 먹고 있다"고 소개했다.

사진=최정동 기자

[탐사기획팀 '대기업 취업' 블로그]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