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명가들의 '메카' 중진공 신제품개발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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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진공 신제품개발관이 배출한 스타 상품. 베스트의 음식물 쓰레기 처리기 "크린이"(上)와 ㈜아이 엔피의 "에디슨 젓가락"(下).

"민감한 센서가 이렇게 튀어나와 있으면 고장이 나기 십상이죠. 접이식으로 바꾸세요."

"팔목 걸이 장치도 더 빼기 쉽게 만듭시다. 컴퓨터 장치는 뒤로 옮겨 공간 활용도를 높이고…."

지난 4일 경기도 시화공단에 위치한 중소기업진흥공단 신제품개발관 상담실.

한 여성 벤처 사장이 자신이 발명한 한의원용 '3차원 진맥 기계' 디자인안을 꺼내 놓자마자 상담을 맡은 박정환 부장의 지적이 봇물 터지듯 쏟아진다. "이래서 어떻게 수출할 생각을 했느냐"는 거의 질책에 가까웠지만 다 듣고 난 사장은 '오히려 다행'이란 표정이다. 이대로 금형을 떠 제품을 만들었다면 변경하는 데 다시 수천만원을 쏟아부을 뻔했기 때문이다.

상담 후 새 디자인 작업을 위한 자금의 30%를 중기청으로부터 지원받을 수 있는 방법도 소개받았다.

이야기가 미처 끝나기도 전 또 다른 두명의 손님이 찾아 왔다. 지난해 말 자신이 발명한 '가정용 믹서기를 이용한 음식물 진공 포장기'의 시제품을 보기 위해 온 개인 발명가와 이곳의 도움으로 제품화에 성공한 'DVD플레이어 내장형 LCD TV' 완제품을 들고 인사차 찾아 온 중소기업 사장이었다.

상담실 장해동 대리는 "하루에도 15명 이상 의뢰인이 찾아와 상담실 직원 4명은 눈코 뜰 새 없을 정도"라며 "경기침체로 기업들은 R&D투자비용을 줄인다고 하지만 발명 열기는 식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 이광천 실장(오른쪽 끝)·박정환 부장(왼쪽 끝)이 중소기업 사장들과 제품 상담을 하고 있다. 시흥=임현동 기자

◆히트제품의 산실=신제품개발관은 아이디어는 있지만 자금이 없어 고민하는 중소기업.개인 발명가들을 돕기 위해 1997년 세워졌다.

상품성 상담부터 도면 작성.시제품 제작까지, 제품화를 위한 모든 과정을 재료비 정도만 받고 해주고 있다.

전기 없이 작동하는 '증발형 가습기', 젊은 엄마들 사이에서 히트를 친 '에디슨 젓가락', 음식물 쓰레기를 분쇄.건조해 가루로 만드는 '크린이'등이 이곳 '출신'이다.

반면 황당한 아이디어를 가지고 와 직원들을 당혹하게 한 경우도 많았다. '공기로 가는 자동차' 구상안을 들고 온 한 발명가는 "압축공기 생산 비용이 너무 높아 상품성이 없다"며 돌려보냈고 '연료 없이 작동하는 영구기관'을 발명했다며 찾아 온 사람에겐 열역학 제1법칙을 설명해 가며 '불가능함'을 이해시켜야 했다.

박 부장은 "3년 째 매달 꾸준히 아이디어를 들고 찾아 와 상품으로 만들 수 있게 해달라고 조르는 할아버지도 계시다"며 "자기 생각이 최고라고 믿는 분들을 설득하는 게 가장 힘든 일"이라고 털어놨다.

◆젊은 발명가 늘어=개관 이래 이곳을 거쳐간 아이디어는 지난해까지 모두 2675건. 매년 평균 300여건 상담이 이뤄졌지만 지난해부터 조금씩 늘어 올해는 목표치를 450건으로 잡았다.

최근 들어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젊은 층과 여성 발명가들의 발걸음이 부쩍 늘었다는 것.

예전에는 중년의 중소기업 사장들이 대부분이었으나 요즘은 대학을 갓 졸업했거나 회사를 그만 둔 20, 30대의 방문이 절반에 가까워졌다.

아이템도 '개량형 CPU 냉각기' '새집증후군 측정기' 등 컴퓨터.디지털 장비부터 스노보드용 첨단 고글 같은 레저용품까지 다양해 졌다.

박 부장은 "그만큼 청년실업이 심각한 탓이겠지만 오히려 이들의 진지한 도전은 가라앉은 경제 분위기를 띄우는 원동력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시흥=김필규 기자<phil9@joongang.co.kr>
시흥=임현동 기자<hyundong30@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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