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의 굴욕 … ‘주민과의 대화’ 생방송서 시민들 “말만 앞서” 성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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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성난 민심에 머쓱해졌다. 민주당 중간선거를 지원하기 위해 20일(현지시간) 필라델피아에서 타운홀 미팅(주민과의 대화)을 열었다가 시민들로부터 호된 쓴소리를 들어야 했다.

오바마는 이날 “이익집단과 손을 잡은 공화당의 금권 공세에 맞서려면 이웃에게 우리의 말을 전하고 민주당 후보에게 선거자금을 모아줘야 한다”고 호소했다.

하지만 그에게 돌아온 답은 냉랭했다. 흑인 여성인 벨마 하트는 오바마를 똑바로 쳐다보며 “당신과 당신의 정부, 내가 표를 던졌던 변화의 방향을 감싸는 일에 넌더리가 난다. 현재 우리가 처한 상황에 너무 실망하고 있다”고 따졌다. 이어 “나는 당신이 말하던 변화를 믿고 표를 던졌던 많은 중산층 중 한 명이며 지금도 계속 변화를 기다리고 있으나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로스쿨을 졸업한 테드 브래스필드는 “공무원으로 취직하고 싶어도 일자리가 없다. 아메리칸 드림은 사망선고가 내려진 것인지 말해 달라”고 요구했다. 타운홀 미팅은 CNBC를 통해 전국에 생방송됐다. 예상치 못한 목소리에 오바마는 눈을 지그시 감거나 쓴웃음을 짓는 등 난처한 표정이 역력했다. 오바마는 취임 후 경기부양과 일자리 창출을 위해 노력한 점을 강조했다. 그럼에도 이들은 “말만 앞설 뿐 대통령에게 행동이 없다”며 성토를 이어갔다.

이런 와중에 오바마의 부인 미셸 여사가 다음 달부터 중간선거 지원을 위한 구원투수로 나선다.

그동안 정치적 행보를 삼가온 미셸은 러스 파인골드(위스콘신) 상원의원 행사를 시작으로 6개 주에서 민주당 후보들의 선거자금 모금행사에 참석해 지지를 호소할 계획이다.

전임 정부와 공화당에 대해 맹공을 퍼붓는 오바마의 방식과 달리 미셸은 공화당에 대한 비판은 하지 않고 오바마 정부 출범 후 변화와 진보에 대해 강조하는 포지티브 전략을 계획 중이다. 이런 방식이 유권자들에게 먹혀들 경우 선거자금 모금 행사를 넘어 지원 유세에 적극 나서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백악관 입성 후 아동비만 퇴치 캠페인 등 비정치 활동에 전념해온 미셸에게 민주당 후보들의 지원유세 요청이 쇄도하고 있다. 오바마 지지율이 최저를 기록하는 상황에서 침체된 민주당에 활력을 줄 수 있는 카드는 미셸뿐이라는 게 민주당 전략가들의 판단이다.

워싱턴=최상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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