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즈보다 훨씬 낫다” 노먼이 감탄한 천재

중앙선데이

입력

"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지난 6월 18일 미국 뉴저지주 갈로웨이에서 열린 숍라이트 클래식에 출전한 알렉시스 톰슨이 10번 홀에서 티샷한 뒤 공의 궤적을 눈으로 쫓고 있다. 15세 소녀 톰슨은 이 대회를 통해 프로에 데뷔했다. [갈로웨이 AP=연합뉴스]

5년 전 여름 LPGA 투어 선수들은 끼리끼리 모여 미셸 위에 대해 쑤군거리는 일이 잦았다. 여자 브리티시 오픈 조직위가 15세의 아마추어 미셸 위에게 출전권을 줬기 때문이다. 미셸 위의 실력은 뛰어났지만 출전 자격은 없었다. 대회에 나가려면 예선을 치러야 했지만 미셸 위는 나가지 않았다. 그런 선수가 출전권을 받는 것은 일종의 특혜라고 선수들은 생각했다. 조직위는 “뛰어난 선수는 메이저 대회에 나와야 한다”는 명분을 댔다. 그러나 당시 엄청난 센세이션을 일으키던 미셸 위로 흥행에 도움을 받으려 했던 것이 더 큰 이유였다.

LPGA 선수들은 기분이 매우 나빴다. 미셸 위는 그해 프로선수들만 출전하는 대회인 LPGA 챔피언십에도 나왔다. LPGA 사무국이 미셸 위를 위해 스스로 규정을 깼다. 골프 룰을 관장하는 미국골프협회(USGA)도 미셸 위에게 예선을 면제해줬다. 미셸 위를 나오게 하기 위해 권위 있는 골프단체들이 줄줄이 규정을 바꿨다. 다른 선수들은 그런 미셸 위를 시기했다. 그러나 미셸 위는 꿋꿋했다. LPGA 챔피언십에서 2위, 브리티시 여자 오픈에선 3위를 했다.

비슷한 논란이 올해 브리티시 여자 오픈에 다시 나왔다. 미셸 위처럼 키 크고 실력이 뛰어난 15세 골프 천재 소녀 알렉시스 톰슨에게 출전권을 줘야 하느냐에 대한 거였다. 공교롭게도 올해 브리티시 여자 오픈은 미셸 위 논란이 있었던 5년 전처럼 로열 버크데일에서 열렸다. 웬만하면 톰슨에게 대회 출전권을 줄 만했다. 톰슨은 미국과 영국의 아마추어 골프 대항전인 커티스컵 멤버로 브리티시 여자 오픈 출전권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톰슨이 프로로 전향하면서 이 출전권이 사라졌다.

톰슨은 브리티시 여자 오픈 지역 예선에 참가하려 했지만 에비앙 마스터스와 날짜가 겹쳐 못 나갔다. 대신 톰슨은 ‘제5의 메이저’라는 에비앙에서 2위에 올라 실력을 과시했다. “뛰어난 선수는 메이저 대회에 나와야 한다”는 5년 전 논리라면 톰슨은 대회 출전권을 받는 것이 옳다. 그러나 브리티시 여자 오픈 조직위는 그를 구제하지 않았다. 비슷한 상황에서 미셸 위는 되고 톰슨은 안 된 것이다. 조직위는 “5년 전 미셸 위를 특별 면제해줬다가 많은 비난을 들었고 이후 규정을 강화했다”고 했다. 안 되는 이유가 미셸 위 때문이라는 거다. 일종의 미셸 위 후폭풍이었다. 미셸 위를 넘어서려는 야망을 가지고 있는 톰슨 측은 좋을 리가 없다.

미셸 위

1995년 2월 10일생인 톰슨은 89년 10월 11일생인 미셸 위보다 여섯 살 어리다. 어릴 때부터 제2의 미셸 위라는 얘기를 들었다. 1m80㎝의 키에 장타를 친다. 골프 가문에서 자랐다. 큰오빠 니컬러스 톰슨은 PGA 투어 선수다. 작은오빠 커티스도 주니어 골프계에서 날리고 있다. 톰슨은 골프 코스 안에 있는 집에 살면서 오빠들과 치핑, 퍼팅 내기를 하면서 컸다. 지는 사람이 설거지와 청소를 했다. 톰슨은 오빠들과 경쟁해서도 질 때보다 이길 때가 더 많았다고 한다. PGA 투어 선수인 큰오빠 니컬러스는 “승부욕은 알렉시스가 가장 강했다”고 말했다

톰슨은 만 12세이던 2007년 US 여자 오픈 예선을 통과했다. US 여자 오픈에 참가한 가장 어린 선수다. 미국주니어골프협회(AJGA) 대회에서 열여덟 살 언니들을 쉽게 누르며 많은 우승을 차지했다. 2009년엔 US 여자 오픈에서 34위에 올랐다. 미국과 영국의 여자 아마추어 대항전인 커티스컵에선 4승1무를 기록했다. 14세부터 아마추어 랭킹 1위를 기록했다. 지난 4월 시즌 첫 메이저 대회인 나비스코 챔피언십에선 24위를 했다. 톰슨은 “프로에서 겨룰 실력이 됐다”면서 올해 6월 프로로 전향했다. 우연인지 따라한 것인지는 모르지만 프로 전향 시기가 미셸 위와 똑같이 만 15세였다.

나이에 상관없이 프로가 될 수는 있다. 그러나 어린 나이에 프로로 전향하면 걸림돌이 있다. LPGA 투어는 만 18세가 되어야 회원으로 받는다. 비회원은 실력이 되더라도 LPGA 대회에 6개 이상 나올 수 없다. 그렇다고 아마추어 대회에 나갈 수도 없다.

송아리, 모건 프레셀 등 LPGA에 특별히 나이 제한을 풀어달라는 청원을 해서 받아들여진 예가 있다. 그러나 톰슨 측은 LPGA에 나이 제한을 풀어달라는 청원을 하지 않았다. 미셸 위도 그랬다. 2006년 미셸 위가 프로로 전향하자 LPGA는 거물인 미셸 위를 빨리 영입하고 싶어 했다. 나이 제한을 풀어줄 테니 회원으로 가입하라는 메시지도 보냈다. 그러나 미셸 위는 외면했다. PGA 투어와 유러피언 투어를 포함, 초청료를 주겠다는 대회가 줄을 섰는데 LPGA 투어 회원이 될 이유가 없었다.

톰슨 측은 다른 길을 생각하고 있다. 그의 부모는 “미셸 위가 어떻게 됐는지 잘 지켜봤다. 그냥 아이로 놔두련다”고 말했다. 또래 아마추어 선수들 수준으로 1년에 15~17개 대회 정도에 나가려 하고 있다. 그러기 위해 LPGA 측에 좀 더 많은 대회에 출전을 허락해달라고 요청했다. 톰슨 측은 LPGA 6개 대회와 LPGA에서 주관하지 않는 US 여자 오픈과 브리티시 여자 오픈에 나갈 계획이다. 유럽과 일본·호주·한국 등의 대회에 초청으로 나가려는 계획도 세웠다. 물론 남자 대회에는 관심이 없다.

두 선수는 올해 비슷한 성적을 냈다. 톰슨은 첫 메이저 대회인 나비스코 챔피언십에서 미셸 위를 2위(276야드)로 밀어내고 드라이브샷 거리 1위(282야드)에 올라 화제가 됐다. LPGA 장타의 대명사가 톰슨으로 바뀌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왔다. 성적도 톰슨이 2오버파 24위로 3오버파 27위를 한 미셸보다 약간 좋았다. US 여자 오픈에서 미셸 위는 컷 당했는데 톰슨은 공동 10위를 했다. 특히 대회 3라운드에서 톰슨은 세계 랭킹 1위를 역임한 신지애, 미야자토 아이와 함께 경기하면서도 주눅들지 않고 자신의 경기를 했다. 에비앙 마스터스에서 톰슨은 2위를 차지해 31위를 한 미셸 위에 앞섰다.

그러나 CN캐나디안 오픈에서 미셸 위는 반격을 했다. 미셸 위는 우승을 했고 톰슨은 컷 탈락했다. 평균 드라이브샷 거리 290야드로 273야드인 톰슨을 압도했다. 톰슨은 미셸 위를 의식하고 있다. 올해 미셸 위와 비슷한 실력을 냈으니 앞으로는 자신이 더 뛰어난 선수가 될 거라고 기대하고 있다. 백상어 그레그 노먼은 톰슨에 대해 극찬을 했다. “저 나이에 이렇게 완벽한 스윙을 하는 선수를 본 적이 없다. 타이거 우즈보다 훨씬 낫고 힘과 스윙도 대단하다.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은 감탄사뿐이다”고 골프다이제스트에 말했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실력이 향상된다는 보장은 없다. 골프는 매우 민감하며 여자 선수들의 전성기는 빨리 온다. 톰슨은 이미 성인인지도 모른다. 그의 외모는 어른 같고 10대 여성들은 정신적으로 어른에 더 가깝다. 미셸 위도 최고 성적을 낸 건 16세 때인 2006년이었다. 안니카 소렌스탐의 전성기에 3개 메이저 대회에서 우승 경쟁을 했다. 미셸 위의 스윙은 PGA 투어에서 68타를 치던 2004년에 가장 좋았다는 말도 나온다.

알렉시스 톰슨은 미셸 위가 받은 특혜를 받지 못했다며 아쉬워하는 인상이다. 그러나 톰슨이 미셸 위와 자신을 동등하게 보는 것은 무리다. 15세 때의 기준으로 보면 미셸 위의 성적이 톰슨보다 훨씬 좋았다. 게다가 미셸 위는 남자와 여자의 벽을 깰 소녀라는 강력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다. 톰슨은 미셸 위의 벽을 넘어야 할 두 번째 장타 소녀다. 미셸 위는 성벽(性壁)을 넘기를 사실상 포기한 상태다. 결국 두 선수는 여자 무대에서 맹렬히 경쟁하게 될 것이다. 아시아 선수들에게 점령당한 미국 여자골프의 반격도 이들에 의해 시작될 가능성이 크다.

성호준 기자

중앙SUNDAY 무료체험구독신청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