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북한 서소문 포럼

북한 후계 어떻게 볼 것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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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송미란이 지난달 21일 다시 묘한 글을 썼다. ‘우리는 누구인가’라는 제목의 정론에서 그 답으로 ‘김일성 동지의 후손’을 들었다. 김일성 찬양의 일반론일 수 있다. 하지만 치밀한 3대 세습 정당화의 색채도 묻어났다. ‘김일성 동지의 후손, 생각만 해도 눈시울 젖어 드는 말’ ‘수령님과 하나의 핏줄로 이어지는 후손’ 등등. 이 정론은 그 닷새 후 시작된 김정일의 중국 동북 3성 방문의 전주곡이었다. 김정일은 김일성의 항일운동 궤적을 둘러보았다. ‘항일혁명’은 북한 정권의 원점이다. 아들로의 후계 구축을 다지려는 외유였다는 평가다. 김정일이 김일성 사망 후 유훈(遺訓) 통치를 한 것과 마찬가지로 후계의 정통성도 아버지한테서 찾는 모습은 아이러니다.

‘9월 상순’으로 공시된 노동당 대표자회는 김정일 방중의 연장선상이다. 김정은이 후계자로 공식화되든 안 되든 후계 문제에서 중대 분수령이다. 노동당 중앙위원회 위원을 새로 뽑기 때문이다. 중앙위는 당의 최고 권력기관이다. 김정은을 떠받칠 새 권력 엘리트가 등장하는 셈이다. 당 조직의 물갈이다.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 이제강의 사망 발표와 라이벌이던 장성택 국방위 부위원장의 급부상 등 최근의 권력 부침은 이와 맞물려 있는지 모른다. 노동당의 정상화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김일성 사망 후 당은 제 기능을 못했다. 선군정치 기치 아래 세력을 불린 군부에 대한 당적 통제가 세질 것 같다. 후계자를 위한 견제와 균형이 아닐까. 당 대표자회는 김정일 시대의 총결산이기도 하다. 김정일 시대가 완성돼야 후계 체제가 막을 올린다. 관영매체의 김정일 우상화는 지금 정점으로 치닫고 있다. 김정일은 군림하고, 김정은이 통치해 나가는 구도의 시작이다.

후계 국면은 대내외, 대남 관계에도 변화의 바람을 몰고 온다. 후계자의 업적 쌓기 때문이다. 후계의 정통성 구축이 김정일의 몫이라면 효율성 제고는 후계자의 과제다. 올해 북한 신년사의 키워드인 ‘인민 생활의 결정적 전환’은 그 포석으로 보인다. 북한은 2008년 노력동원 운동인 ‘150일 전투’도 벌였다. 김정은이 주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정일은 후계자로 내정된 74년 속도전인 ‘70일 전투’를, 후계자로 공식 등장한 6차 당대회 직전 ‘충성의 100일 전투’를 전개했다. 천안함 사건도 후계 구축의 산물로 보는 시각이 강하다. 내부적으로 김정은 띄우기일 수 있다는 얘기다. 후계 체제가 안정될 때까지 사과를 받아내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김정은 후계 구도는 순항할 것인가. 70~80년대 김정일 후계 구축 때 북한은 안정적이었다. 절대 권력의 김일성이 건강했고, 경제도 괜찮았다. 그럼에도 김정일 후계는 한때 도전을 받았다. 76년 6월 김동규 부주석(서열 3위)·유장식(당 비서) 등이 집단적으로 “후계를 너무 서두른다”고 제동을 걸었다. 당·군의 핵심들이 ‘뼈를 깎고 심장을 녹여낸다’는 사상 검토를 거쳐 숙청됐다. 후계 안정화에는 김일성의 후광을 빼놓을 수 없다. 그러나 지금 김정일은 온전치 못하다. 김정은의 경험도, 지명도도 얕다. 국제사회의 경제 제재도 받고 있다.

문제는 북한에서 후계 문제가 만사(萬事)라는 점이다. 수령의, 수령에 의한, 수령을 위한 체제이기 때문이다. 이른바 ‘유일 영도체계’의 나라다. 다음의 수령인 후계자를 위해선 모든 것이 희생될 수 있다. 소련 공산당 흐루시초프의 스탈린 격하, 중국 공산당 2인자 린뱌오(林彪)의 쿠데타와 4인방의 횡포를 반면교사로 삼은 제3의 길이었다. 집단지도 체제는 김정일 후계가 구축되기 전의 고전일 뿐이다.

과도기의, 후계 국면의 북한을 어떻게 관리할지는 우리에게 근본 문제다. 연착륙이냐, 경착륙이냐. 우리도 북한의 비핵화, 개혁·개방 압박의 끈을 가질 수 있는 시점이다. 북한 실력자와의 막후 채널도 필요하다. 북한의 후계 국면을 대북 전략의 큰 그림과 연계해볼 때다. 김정은 후계 문제가 곧 북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오영환 외교안보 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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