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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성산 환경조사 합의파장] 고속철 공사 지연 불가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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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단식 100일 만인 3일 정부와 지율 스님이 공동조사에 합의함으로써 양측은 극단적인 상황은 피할 수 있게 됐다.

이날 합의문에는 공사를 중단한다는 명시적 표현은 없었다. 하지만 정부가 "3개월간의 환경영향공동조사 기간 중 조사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를 하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함에 따라 부분적인 공사 중단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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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합의로 고속철 건설이 지연되고, 다른 국책사업 추진에도 부정적 영향이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종교.시민단체 인사들이 극단적 수단을 동원해 반대할 경우 정당한 절차를 밟아 추진되는 국책사업이 타격을 받는 선례로 남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정부도 협상 과정에서 공동조사 요구는 비교적 쉽게 수용했지만 공사 중단 요구는 막바지까지 거부했던 것이다. 그러나 지율 스님의 목숨을 내놓은 단식 앞에 정부는 끝내 두 손을 들 수밖에 없었다.


지율 스님이 단식을 풀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법륜스님(右)이 정토회관에서 불자들과 함께 기뻐하고 있다.김태성 기자

이제 남은 문제는 공동조사단의 구성과 운영, 조사 결과의 수용 여부다.

일단 조사단 구성 자체에는 큰 이견이 없을 전망이다. 공동조사단은 사업자인 한국철도시설공단 측과 지율 스님이 같은 수로 추천한 전문가가 참여, 3개월 정도 운영한다는 것이 정부의 구상이다.

조사단은 터널 공사의 안전성을 점검하고 천성산 고산습지 주변을 시추해 습지와 지하수맥이 연결돼 있는지를 가리게 된다. 하지만 공동 조사를 위해 공사를 얼마나 오래 중단할 것인가를 놓고 양측은 벌써부터 이견을 보이고 있다. 정부는 조사단을 구성한 뒤 공사 중단 기간을 합의하겠다는 입장인 반면 지율 스님 측은 당장 토목공사를 중단하는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

공동조사 결과를 어떻게 해석하고, 이를 공사에 어떤 식으로 반영할지를 놓고 갈등이 재연될 소지도 있다. 사업자인 철도시설공단 관계자는 "지율 스님이 노선 재검토 위원회 결정이나 부산고법의 조정안을 거부한 적이 있지만 이번 조사의 결론만큼은 반드시 수용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터널 공사가 습지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확인될 경우 전면적인 환경영향평가를 다시 실시하고 노선을 변경해야 한다는 주장이 거세게 일 것이 불 보듯 뻔하다.

환경정의 오성규 사무처장은 "순수한 가치를 추구한 지율 스님의 요구를 전략적 판단으로 맞선 정부가 받아들인 것은 사필귀정"이라고 말했다.

강찬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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