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노총, 극심한 내분…조직 분열 위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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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의 노사정위 복귀가 사실상 무산됨에 따라 올해 노사관계에 먹구름이 드리워졌다. 민주노총은 이번 대의원대회에서 표출된 극심한 내부 갈등으로 조직 자체가 분열될 위기를 맞게 됐다.

노사정위 복귀 실패는 대화 참여를 추진하던 이수호 지도부의 지지세력이 약화되는 대신 투쟁을 중시하는 강경파의 목소리가 더 커질 가능성을 의미한다.

비정규직 법안, 노사관계 로드맵 제정 등 민감한 현안들을 놓고 앞으로 노사가 대화보다는 대립과 갈등을 빚을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미 민주노총내 강경파는 "비정규직 법안을 국회에서 처리할 경우 2월부터 총파업을 벌이겠다"고 선언했다.

노동전문가들은 민주노총의 노사정대화 복귀가 끝내 무산된 것은 사회적 합의에 대한 현장 노조의 불신이 아직 높기 때문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1일 오후 영등포구민회관에서 열린 민주노총 임시대의원대회에서 한 조합원이 회의진행방식을 놓고 이수호 위원장(右)에게 항의하며 의사봉을 빼앗고 있다.[연합]

민주노총 이상학 정책연구원장은 "이전에 노사정 대화에 참여했던 경험이 대의원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한다"고 풀이했다.

실례로 1998년 공공.금융 구조조정 문제를 다룰 때 재경부총리가 노사정회의에 참여하기도 전에 미리 기자회견을 열고 방향을 제시하는 등 지나치게 일방적이었다는 것이다.

또 다른 노동전문가는 "노무현 정부의 노동정책을 볼 때 대화에 참여해봤자 '들러리'밖에 안될 것이라는 불신이 민주노총 내부에 여전히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는 것 같다"고 해석했다.

이날 열린 대의원대회에서 노사정위 복귀 반대세력은 "현 정부는 입으로는 노.정 간 '밀월관계'를 말하면서 뒤로는 파견제 확대법안, 공무원노조법 강행처리 등으로 노동자들의 뒤통수를 쳤다"며 "노동자를 기만하는 사회적 대화를 반대한다"고 주장했다.

정부는 민주노총이 노사정위에 복귀하지 않더라도 노사관계 로드맵 제정 등 각종 현안들을 그대로 밀고나갈 계획이다.

김대환 노동부장관은 지난달 6일 노사정 신년하례식에서 "노사관계 로드맵은 올해 안에 입법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노총의 이번 대의원대회를 계기로 주도권을 쥐게 된 강경파의 공세적 투쟁이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노사정위 관계자는 "사회적 대화를 반대하는 전국노동자 투쟁위원회 등 강경세력이 이수호 위원장의 사퇴가 현실화될 경우 조직 장악을 시도할 가능성이 있다"고 관측했다.

한 노동계 관계자는 "이날 대의원대회에서 노사정 대화 복귀문제가 표결이라는 민주적 절차가 아니라 내부 갈등으로 무산된 것은 앞으로 두고두고 민주노총에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대화 복귀에 찬성하는 다수의 대의원과 표결처리를 방해한 반대세력의 반목이 다시 화합하기 힘든 수준으로 깊어질 것이라는 관측이다.

사퇴의사를 밝힌 이수호 위원장이 바로 사퇴를 하건 재신임 투표를 실시하건 간에 이 위원장 지지세력과 반대세력은 지도부 신임문제를 놓고 거세게 충돌할 가능성이 높다. 이런 과정에서 일부 세력이 조직에서 이탈할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한편 노사정위에 계속 남아 있는 한국노총은 각종 현안의 논의과정에 노동계를 대표해 참여하면서 영향력을 확대해갈 것으로 보인다. 한국노총 관계자는 "민주노총이 노사정위에 들어와 함께 싸우기를 바랐지만 무산돼 아쉽다"며 "한국노총은 계속 노사정위에 참여해 노동계의 입장을 최대한 반영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철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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