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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지름 114m 경주 황남대총이 서울에 왔다, 유물 1268점과 함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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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황남대총 -. 신라의 가장 거대한 고분이다. 그 핵심 유물이 서울에 왔다. 국립중앙박물관(관장 최광식)은 ‘황금의 나라, 신라의 왕릉 황남대총’ 특별전을 7일부터 다음 달 31일까지 상설전시관 1층 특별전시실에서 연다. ‘황금의 나라’ 신라의 진면목을 볼 수 있는 전시다. 6일 열린 언론공개회에서 미리 살펴본 전시장은 마치 옛 신라 왕의 무덤 속에 들어온 듯한 느낌을 줬다.

◆신라 유물의 보고=황남대총은 덧널(목곽)을 3중 구조로 쌓아 공간을 확보한 뒤 그 바깥에 돌을 올려 단단히 다지고 흙으로 봉분을 쌓은 4세기 돌무지덧널무덤(적석목곽분)이다. 천마총이나 금관총 같은 신라 고분도 비슷한 구조다. 황남대총은 남자가 묻힌 남분(南墳)과 여자가 묻힌 북분(北墳)이 쌍봉을 이루고 있는데 전체 밑지름이 114m, 높이가 약 22m에 달한다.

산처럼 쌓아 도굴꾼도 건드리지 못한 이 대형 무덤은 1973년부터 2년간 발굴됐다. 출토 유물만 총 5만8441점. 이번 전시에는 그 중 중요 유물 1268점이 나왔다. 최광식 관장은 “몇몇 유물이 전시에 선보인 적은 있지만 남분과 북분을 아울러 황남대총의 전모를 보여주는 전시는 처음이고, 신라의 특정 고분을 테마로 삼은 전시도 처음”이라고 말했다. 출토 유물의 양이 하도 많아 그걸 분석하고 정리하는 데에 긴 시간이 걸렸다는 것이다.

신라 황금 문화를 대표하는 경주 황남대총 출토 금관(위)이 서울에 왔다. 북분에서 출토된 것으로 나뭇가지와 새를 형상화했다. [오종택 기자]

◆금으로 통치한 마립간=전시장에 들어서자마자 직사각형의 목곽이 보였다. 목곽(木槨)은 관을 안치하는 부분과 주요 부장품을 묻는 부장칸으로 나뉘어 있다. 그 둘레에는 나무 기둥이 여러 개 솟아있다. 동서 4.7m, 남북 2.3m 크기의 중곽(中槨)을 실물의 95%로 재현한 구조물이다. 무덤의 규모를 체감케 했다.

황남대총 남분에는 마립간(‘왕’을 뜻하는 4세기 무렵 신라의 용어)이 묻혔다. 내물(재위 356~402년), 실성(재위 402∼417년), 눌지(재위 417~458년) 마립간 중 누구의 무덤인지에 대해서는 아직 정리되지 않았다. 금은 마립간이 권위를 나타내고 지방의 실력자들을 포섭하는 수단이었다. 금관, 금제 허리띠, 금제 귀고리류는 물론이고 말 안장마저도 금으로 장식할 정도였다.

마립간의 무덤에선 순장된 여성의 뼈가 한 구 발견됐다. 여성용 금제 귀고리가 여럿 출토돼 최소한 5명의 여성이 순장됐으리라 보는 시각도 있다. 남분에서 출토된 여러 자루의 환두대도와 고리자루큰칼 등 무기류, 여러 벌의 은허리띠 등을 통해 마립간의 위세가 만만치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다. 동시대 고구려·중국·일본은 물론 실크로드를 통해 들어온 외국의 문물도 이색적이다.

국립중앙박물관 함순섭 학예연구관은 “드라마 ‘김수로’에서 가야가 철의 대국으로 묘사되는데, 출토된 유물 양으로 봤을 때는 신라가 가야보다 10배 이상 우월하다”며 “남분 1기에서 나온 양이 김해 대성동 고분군 전체 철기 양과 맞먹는다”고 설명했다.

◆왕과 왕비의 금관=왕비가 묻힌 것은 왕이 죽은 지 몇 십 년이 지나서다. 전시장 맨 안쪽에는 남분과 북분에서 출토된 금관·허리띠·가슴꾸미개 등을 나란히 비교해놨다. 공교롭게도 마립간의 왕관은 구리에 금도금을 한 금동관이고, 왕비의 것은 금 함량 87%의 금관이다. 시기 차이를 감안하더라도 왕보다 왕비의 금관이 유난히 고급스럽고 화려한 것은 미스터리다.

글=이경희 기자
사진=오종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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