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옌바오항, 국민당 파티서 ‘독일의 소련 침공’ 첩보 빼내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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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호 29면

소련 홍군이 동북을 점령하자 장제스는 가장 믿을 만한 두 사람을 동북에 파견했다. 1946년 1월 창춘에 도착한 쑹메이링(앞줄 왼쪽 첫째)과 장징궈(오른쪽 셋째)를 맞이하는 소련군 원수 이마노프스키. 당시 옌바오항은 랴오베이(遼北)성 주석이었지만 두 사람의 마중을 나가지 않았다. 김명호 제공

항일전쟁이 중반에 들어서자 국민당은 반소(反蘇)·반공(反共)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소련 대사관의 중국 철수도 시간 문제였다.

사진과 함께하는 김명호의 중국 근현대 <181>

코민테른 극동(極東) 정보국은 국민당의 군사·정치·외교·경제·문화에 관한 고급 정보를 제공해 줄 수 있는 중공 당원을 옌안에 요청했다. 전시 수도 충칭에 상주하고 있던 중공 남방국 서기 저우언라이는 리커농과 머리를 맞댔다. 옌바오항 정도가 아니면 불가능했다.

저우는 옌안에 있던 옌바오항의 큰딸을 집으로 돌려보냈다. 주변 사람들에게는 폐결핵 때문이라고 둘러댔다. 충칭 교외 베이베이(北<789A>)의 움막 지하실에 무전기를 설치해 줬다.

1945년 8월 9일 소만국경을 넘어온 소련 홍군은 동북에 널려 있던 일본 관동군을 손바닥 들여다보듯 했다. 불과 열흘 만에 창춘(長春)·선양(瀋陽)·하얼빈(哈爾濱)을 점령했다. 하얼빈 역사를 점령한 소련 홍군.

옌바오항은 자녀들을 데리고 매주 두 번씩 베이베이로 나들이를 갔다. 국민당 고관의 가족 소풍을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다. 큰딸의 손에는 항상 영문 성경이 들려 있었다.
1941년 5월 초, 국민당 고위층만을 위한 작은 파티가 열렸다. 옌바오항은 남들보다 조금 늦게 참석했다. 분위기가 평소와 달랐다. 다들 희희낙락하며 술잔을 주고받느라 정신이 없었다. 옌바오항은 위유런(于右任)에게 다가갔다. 현대 초서의 창시자이며 34년간 감찰원장을 지낸 위유런은 성인(聖人) 대접을 받을 정도로 만인의 존경을 받았지만 보안의식이 전혀 없었다. 본인도 그것을 흠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평소 “광명 천지에 숨길 것이 없다”며 호언장담을 일삼았다. 분위기가 들떠 있는 이유를 묻자 “독일이 6월 20일을 전후해 소련을 침공한다”며 입법원장 쑨커(孫科)에게 들었다고 출처까지 얘기해 줬다.

옌바오항은 심장이 멈추는 것 같았다. 확인을 위해 쑨커 곁으로 갔다. 별 관심이 없는 척하며 물었다. 국부 쑨원의 장남인 쑨커는 평생 거짓말을 해 본 적이 없는 사람다웠다. “위원장(장제스를 지칭)이 그렇게 말했다. 두 귀로 똑똑히 들었다.”
황급히 자리를 떠난 옌바오항은 딸과 함께 베이베이로 달 구경을 갔다. 영문 성경에 등장하는 인명(人名)과 지명(地名)이 전파를 탔다.

‘사회조사부’의 보고를 받은 옌안의 중공 지휘부는 마오쩌둥의 명의로 스탈린에게 전문을 보냈다. 소련 군사 정보국은 일본·독일·스위스 등에도 정보망이 있었다. 비슷한 정보를 보내왔지만 모두 첩보 수준으로 파악하고 있었다. 중공 최고지도자가 보낸 옌바오항의 정보는 스탈린의 결심을 굳히게 했다.

6월 22일 독일군이 소련을 침공했다. 6월 30일 스탈린은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 준 덕에 미리 조치를 취할 수 있었다”는 감사 전문을 중공 중앙에 보냈다. 이 전문은 1947년 봄 중공이 옌안을 철수할 때 소각해 버리는 바람에 중국 쪽에는 남아 있지 않다.
동북의 일본 관동군에 관한 기밀 자료를 깡그리 빼낸 것도 옌바오항이었다. 1944년 봄 군정부장 천청(陳誠)은 옌바오항에게 ‘관동군의 소련 공격 가능 여부’를 상세히 파악하라고 지시했다. 군사위원회 3청(<5385>)에는 어마어마한 숫자의 정보원이 수집해 온 일본군 관련 정보들이 산처럼 쌓여 있었다. 옌바오항은 천청의 지시를 빙자해 동북의 일본관동군에 관한 자료를 요청했다. 3청 청장은 동북사람이었다. 3일 후에 반납하라며 옌바오항이 요구하는 것들을 다 내줬다.

동북에 주둔한 관동군의 각 부서와 방어계획, 요새의 위치와 병력, 소유 무기, 각급 지휘관의 이름과 경력 등 온갖 기밀이 다 들어 있었다.

옌바오항의 보고를 받은 저우언라이의 중공 남방국은 사진기 아홉 대를 동원했다. 옌안은 전달받은 필름을 고스란히 소련에 넘겨줬다.

1995년 옌밍푸가 모스크바를 방문했다. 러시아정부는 반세기 전 옌바오항이 제공한 관동군 관련 정보의 사본을 아들에게 선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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