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바로보기 …' 펴낸 충남대 이숙희 교수 주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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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秋風唯苦吟(추풍유고음.가을 바람은 괴로움을 읊는데)

世路少知音(세로소지음.세상에 참된 벗은 적구나)

窓外三更雨(창외삼경우.창 밖 깊은 밤에 비가 내리고)

燈前萬里心(등전만리심.등 앞에서 만 리를 향하는 이 마음)

신라 때 문장가 최치원(857~?)의 '추야우중(秋夜雨中)'이란 한시(漢詩)다. 한문학사의 명작으로 중고교 교과서에도 실려있다. 교과서는 '최치원이 당나라 유학 시절 고국을 그리워하며 지은 시'라고 풀이하고 있다.

그러나 충남대 한문학과 이숙희(52.사진) 교수는 최근 '한시 바로보기 거꾸로 보기 1, 2'(역락)란 저서에서 "최치원이 귀국 후 당나라 유학 시절을 그리워하며 지은 시"라고 반박했다.

물론 근거가 있다. 2구에서 '지음(知音)'은 자신을 알아주는 벗을 말한다. 최치원은 당나라 유학 시절인 16년 동안 1만 수가 넘는 한시를 지었고 과거에도 급제했다. 그러나 신라에선 6두품 출신이라는 한계를 절감해야 했고, 끝내 유랑의 길을 걷는다.

따라서 '지음'을 그리워하는 마음은 귀국 후의 정서여야 옳다는 것이다. 다른 근거는 최치원의 대표 작품집 '계원필경'에 '추야우중'이 없다는 점. '계원필경' 이후의 작품이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한문학계도 이 교수 주장에 수긍하는 편이다. "동의한다. 이를 계기로 교과 과정의 한시들을 재검토 해야 한다."(서울대 이종묵 교수), "비슷한 취지의 박사논문도 나와 있다."(한양대 정민 교수)

저자는 책에서 신라부터 조선까지 한시 120여 수를 새롭게 해석했다. 그러나 '추야우중' 이외의 분석에는 이론이 많다. "너무 과도한 의미 부여"나 "엄밀치 못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한시를 어렵게만 여기는 시기에 나온 매우 의미있는 작업"이라는 목소리는 같다.

글=손민호, 사진=신동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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