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 도시엔 ‘광역 급행열차’가 달린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02면

사진은 프랑스의 고속철도 에르에르


◆러시아 모스크바=러시아 모스크바 승리공원에는 지하철 파르크 파베디(Park Po bedy)역이 있다. 지상에서 역 플랫폼으로 내려가는 길이가 126m로, 유럽에서 가장 긴 에스컬레이터를 타야 한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3분 정도 내려가면 플랫폼이 나온다. 지상으로부터 수직 84m 아래 자리 잡고 있다. 이 깊이에서 지하철이 달리는 것이다.

11개 노선 292㎞인 모스크바 지하철 전 구간은 지하 50m 보다 더 아래에 건설됐으며 하루 이용객이 900만명을 넘는다. 상트페테르부르크 지하철보다 더 깊다. 말 그대로 대심도(大深度)다.

선진국에서는 광역급열차와 편리한 환승시스템을 통해 교통난을 해결하고 있다. 사진은 러시아 급행열차 내부. [경기도 제공]

러시아의 지하철이 이같이 땅속 깊이 달리는 데는 이유가 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1935년 건설된 모스크바 지하철은 전쟁에 대비한 물자 수송과 방공호 역할을 위해 땅속 깊이 건설됐다. 지하철의 최대 속력은 시속 80㎞에 달하고 두 도시 지하철의 평균 속도 역시 시속 50㎞에 육박한다.

승객들은 땅속 깊은 곳에 지하철이 운행되지만 안전상의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다. 전동차 창문으로 들어오는 터널의 공기에 대해서도 불쾌감을 느끼지 않는다. 환기시설이 많은 덕분이다. 비상상황에 대비해 역에는 24시간 안전요원이 대기한다.

◆프랑스 파리권=파리시와 주변 5개 신도시를 연결하는 고속철도 에르에르(RER: Reseau Express Regional)는 신도시 건설계획과 맞물려 있다. 파리는 인구 증가로 도시가 팽창하자 업무와 인구 분산을 위해 1965년 계획도시인 라데팡스를 건설했다.

라데팡스는 파리의 서부 외곽 지역에 있는 첨단 비즈니스 타운으로 루브르박물관· 샹젤리제 거리·개선문 등에서 가깝다. 광역급행전철은 라데팡스 중심업무지구와 주변 신도시 5개를 통과하는 것을 목표로 만들어졌다.

1969년 파리의 동·서를 관통하는 에르에르 A노선을 시작으로 1977년 남·북축의 B노선이 만들어지고 C·D·E선이 개통됐다. 이들 5개 노선은 파리 지하철 14개 노선, 노면전차 4개 노선 등과 연결되는 파리시와 외곽 거점을 잇는 주요 교통수단이다.

에르에르가 광역고속철도로 역할을 하는 비결은 역간 거리를 차별화하고 역수를 최소화한 데 있다. 중심도시에서 멀어질수록 역간거리가 길고 도시 내부에서는 반대로 짧다. 특히 신도시와 파리의 기존 환승역 등 주요 거점은 직선화했다. 거점역과 환승역만 정차함으로써 열차가 빠른 속도로 달릴 수 있다. 최근 건설된 에르에르 E선의 표정속도(주행거리를 승하차 시간 등 실제 소요시간으로 나눈 속도)는 시속 71㎞다. 역간거리는 평균 2.3㎞다. 오전 출근시간대는 A~C선이 2분30초마다, D~E선은 5분마다 역을 통과한다.

◆영국 런던권=영국 정부는 1980년대부터 지하철과 국철의 한계를 경험하고 있다. 최근 21세기 장기발전계획의 하나로 동서와 남북을 각각 잇는 광역철도 ‘크로스 레일’을 건설하기로 하고 노선을 결정했다.

2017년 개통을 목표로 메이든헤드~아비우드, 메이든헤드~쉔필드를 잇는 노선을 건설 중이다. 한국의 수도권 광역급행열차와 마찬가지로 복잡한 노선을 피하기 위해 도심 지역은 60m 지하에 건설하고 있다. 외곽은 지상 노선도 건설할 예정이다. 개통 시 운행속도는 시속 100㎞로 짧은 시간에 광역 간 이동할 수 있다. 크로스 레일은 런던권의 경제 성장과 지역 재개발에 긍정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독일 베를린권=베를린 대도시권 철도는 지역 간 철도이자 국철인 더치 반(Deuch Bahn), 고속운행 열차인 에스반(S-Bahn), 일반 지하철인 우반(U-Bahn), 노면 전차인 트램(Tram) 등 네 가지로 분류된다. 베를린 지역을 3개 구역으로 나눈 구역 간 요금체계가 시행중인데 지역간 철도를 제외한 모든 교통수단에 통합요금제를 적용해 승객 편의를 높였다.

하루 30만명이 이용하는 베를린 중앙역은 근거리 열차 310개, 장거리 열차 160개가 다닌다. 특히 지하는 우반을 고가는 에스반을 운행해 대규모 환승이 가능하다. 승객들은 1층 8개, 2층 6개의 선로를 이용해 동·서, 남·북간 열차를 수직 환승할 수 있다. 한 곳에서 모든 열차를 탈 수 있는 것이다. 독일 연방철도주식회사의 울리케 자이덴파덴씨는 “중앙역 건설은 역사에 남을 쾌거”라고 말했다.

◆일본 도쿄권=도쿄의 광역철도는 도심지의 전철노선 등 다양한 노선과 연계돼 있다. 모든 역을 정차하는 보통열차(시속 50㎞이하), 일부 역을 무정차하는 쾌속·급행·준급행(시속 50~60㎞), 주요 거점 도시만을 정차하는 특급열차(시속 60㎞ 이상)등 다양한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모든 노선에는 3~4개 역마다 대피선이 설치돼 있으며 일부 구간에는 3선을 설치해 급행·완행 등 속도가 다른 3~5개 종류의 열차를 운행하고 있다. 최고 속도 시속 130㎞를 자랑하는 쯔쿠바 익스프레스는 아키하바라의 쯔쿠바시를 연결하는 교통수단으로 고속버스나 죠반선 경유열차보다 경쟁력있는 교통수단으로 자리잡고 있다. 도쿄 철도망은 노선이 증가할 때마다 기존 노선을 피해 더 깊은 지하에 건설되고 있다. 이미 10여년 전부터 지하 30~40m에 노선이 구축되고 있다.

최모란 기자 (moran@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