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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 시평

상어 변호사의 황금어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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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미국 사회에서는 변호사가 상어 얼굴을 하고 있는 삽화라든가 상어도 직업상 예의 때문에 변호사는 잡아먹지 않는다는 조크가 유행이다. 일부 악덕 변호사들의 소송사냥에 다수의 선량한 피해자들이 속출하고 있기 때문인데 언론도 미국 사회의 정상 기능이 마비될 지경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이렇듯 상어변호사들이 기승을 부리는 근본 원인은 바로 집단소송제 때문이다. 이들은 기업, 특히 배상능력이 충분한 우량 기업을 먹이로 삼아 제품에 결함이 있다거나 허위공시를 했다는 이유로 집단소송을 거는데 대부분 꼼짝없이 걸려든다. 기업 입장에서는 소송에 경영이 마비되고, 혹시라도 패소하면 천문학적 배상금을 물어야 하기 때문에 10년 이상씩 소송에 시달리느니 변호사가 협상안을 제시하면 적당한 수준에서 합의하고 만다.

그래서 세계 초일류기업 중 집단소송의 홍역을 치르지 않은 기업이 드물다. 주주중시 경영의 대표적 사례로 꼽히던 코카콜라는 주가 전망이 너무 낙관적이었다는 이유로, 글로벌 500대 기업의 수위를 독차지해 온 월마트는 여직원에게 성차별을 했다는 이유로, 맥도널드는 비만을 책임지라는 이유로 각각 집단소송에 시달렸다.

다우코닝사처럼 도산 위기에 몰린 기업들도 있다. 하버드대 의대나 미국학술원에서도 회사 측 책임으로 보기 어렵다는 연구 결과를 법원에 제출했지만 승소하지 못하고 32억달러의 배상금 지급에 합의해야 했다.

반면 집단소송으로 주주나 소비자가 얻는 이득은 보잘것없다. 일본 도시바사의 경우 노트북 부품 일부가 이론적 결함이 있다는 이유로 소송을 당해 21억달러의 배상에 합의했지만 소비자가 받은 것은 새 제품 할인쿠폰이 고작이었고, 대신 변호사만 1억5000만달러의 거액 수임료를 챙겼다.

그런데 본고장인 미국에서조차 백악관이 나서서 매년 2300억달러의 국력 낭비 요인이라고 비난하는 이 집단소송제가 비록 증권 분야에 국한됐지만 올해 우리 사회에도 시행된다. 일부에서는 기업이 투명하게 경영하면 문제될 게 없다고 하지만, 이는 미국 사회에서 망국병으로 지목되고 있다는 사실을 외면한 채 변호사를 양심의 수호자라고 믿는 순진한 생각일 뿐이다.

증권집단소송제가 도입되면 투자와 제품 개발 등 일자리를 만들고 소비자를 위해 쓰일 자금이 악덕 변호사를 배불리는 데 새어나갈 가능성이 크다. 기업가 정신도 움츠러들게 된다. 주주 입장에서도 소송으로 주가가 떨어져 손해를 보고, 배상 때문에 기업가치가 하락해 또 손해를 보게 된다. 주주이익을 보호하기보다는 오히려 위협하는 측면이 많아 월가는 물론 한국에서 활동 중인 펀드매니저들도 싫어하는 것이 집단소송제다.

이 때문에 경제계에서는 처음부터 제도 도입에 반대했다. 법이 통과된 뒤에도 허위공시와 같이 악의적으로 투자자에게 손해를 끼치는 행위는 처벌을 받겠지만 과거의 분식행위 때문에 소송을 당하는 일만은 피하게 해달라고 호소했다. 분식회계는 잘못했지만 불황으로 이익을 제대로 못내 과거 분식을 해소하기 어려우니 조금만 더 시간 여유를 달라는 취지에서였다.

다행히 정부도 사태의 심각성을 이해하고 당정 협의를 거쳐 과거 분식에 한해 2년간 적용을 유예하는 방안을 마련했는데 이마저 일부 여당 의원의 반대로 무산됐다. 기업인은 저마다 가슴에 숯덩이를 안고 산다고 했는데 분식을 아직 정리하지 못한 기업인들은 이제부터 숯덩이를 하나 더 안고 살게 된 셈이다.

조만간 법률시장이 개방되면 한국사회가 상어변호사들의 황금어장으로 변할까 두렵다. 사법연수원을 수료해도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는 젊은 변호사들이 앰뷸런스 체이서(Ambulance Chaser:교통사고만 쫓는 악덕 변호사)라도 하려 들 것인데 이보다 한 수 위인 집단소송 전문 변호사를 꿈꾸는 이들이 쏟아져 나오지 않을까 걱정이다.

남소 방지 입법이 시급한 상황에서 얼마 전 집단소송의 적용범위를 오히려 소비자와 환경 등 모든 분야로 확대하는 법안이 제출됐다. 변호사는 도덕적이고 기업은 부도덕한 집단이라는 반기업정서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집단소송제에 시달려서는 '기업 할 수 없는 나라'가 되고 만다. 정치권에서 미국 사회의 집단소송 경험을 잘 헤아려 국가경제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입법활동을 펼쳐주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박용성 대한상공회의소.국제상업회의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