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을 바꾼 힘, 룰라 대통령의 지도력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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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호 24면

한반도에서 지구 중심을 가로지르는 대척점 주변으로 중국만큼의 거대한 땅덩어리를 차지하고 있는 나라가 브라질이다. 비행기로 꼬박 스무 시간이 걸리는 먼 나라이자 우리에게는 축구와 커피, 삼바축제 외에는 별반 기억에 남는 게 없는 생소한 곳이다. 그러나 브라질은 천혜의 자연환경과 천연자원을 갖춘 축복의 땅이다. 국토의 60%가 아마존의 정글과 산림으로 덮여있어 지구 전체 산소의 3분의 1을 만들어 내는 허파 역할을 하고 있기도 하다.

송기홍의 세계 경영

국내 대기업의 물류 최적화 프로젝트를 위해 찾은 브라질은 다양한 정서와 분위기가 뒤섞인 난해함의 대상이었다. 철광석, 원유 등 막대한 자원을 바탕으로 한 엄청난 성장잠재력의 이면에는 사회불안과 인플레, 빈부격차로 대표되는 가혹한 현실이 존재한다. 열악한 환경과 팍팍한 현실에도 늘 웃음을 잃지 않는 특유의 낙천성과 남미 종주국으로서의 자부심이 남다르다. 이런 브라질이 오랜 미몽에서 깨어나 숨가쁜 질주를 시작했다.

먼저 낙후된 사회 시스템에 메스가 가해졌다. 2차대전 이후 경제 악순환의 주범이었던 미흡한 자본 투자와 높은 실업률, 막대한 국가부채가 일차 대상이었다. 적극적인 대외개방과 세제 및 연금개혁, 선심성 사회사업 예산 감축 등 개혁이 단행됐다. 내수 중심의 성장모델에서 시장개방과 수출 주도로 방향을 전환하고 외국기업에 대한 토지 무상제공과 소득세 감면으로 투자를 끌어들였다. 연 2000%가 넘던 살인적 인플레를 5% 미만으로 유지하면서 금리를 낮춰 경기부양과 제조업 기반 육성에 힘썼다. 그 결과 글로벌 금융위기가 강타한 2009년 이후에도 10%가 넘는 성장률을 기록하며 ‘가장 늦게 위기에 들어가 가장 먼저 위기를 벗어난 나라’라는 찬사를 얻었다.

최근의 성장가도는 원자재가격 상승 등 호재에 힘입은 바 크지만 그 원동력은 룰라 대통령의 리더십에 있다. 빈민노동자 출신으로 초등학교 졸업이 학력의 전부인 그는 2002년 빈곤층의 절대적 지지에 힘입어 대통령에 당선됐다. 취임 후 항간의 예측을 깨고 시장주의자로 변신한 그는 경제정책 집행과 인사에서 실질적인 개혁을 이끌었다. 자본가 출신의 야당의원을 중앙은행의 수장으로 임명하고 IMF가 요구한 연금 개혁과 복지제도 재검토를 이행했다. 더불어 ‘기아 제로’와 빈곤층 생계수당 지급 등 친서민 정책도 일관되게 추진했다. 성장 드라이브 정책에 대한 비난에 “노동지도자 룰라는 노동자를 위해 일했지만, 대통령 룰라는 1억8000만 브라질 국민을 위해 일한다”며 일갈했다. 빈곤층을 돈으로 매수한다는 공격에 대해서는 “배고픈 국민들이 넘쳐나는 한 아무 일도 할 수 없다”고 맞서며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집권 8년의 성적표는 화려하다. 빈곤층이 줄어들면서 중산층 인구가 전체의 42%에서 53%로 대폭 늘었으며, 외환 보유액은 170억 달러에서 2000억 달러로 급증했다. 성장과 안정의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으며 룰라 대통령의 지지도는 80%를 넘어섰다. 물론 일단 신뢰가 구축되면 우직할 정도로 성원을 아끼지 않는 특유의 국민성도 한몫했다. 소모적인 정쟁과 계층 간 대립으로 분란이 끊이지 않는 정치문화를 가진 나라에서는 불가능한 ‘역전 드라마’다.

지금 브라질은 올해로 임기 만료되는 룰라 대통령의 후임을 결정하기 위한 선거 열기로 뜨겁다. 그의 실용노선을 이어 받아 브라질의 성장가도를 다질 지도자가 나올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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