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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을 달리는 연기 뿜는 기차, 모네의 근대문명 예찬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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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호 08면

1 그네(1876),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1841∼1919) 작, 캔버스에 유채, 92×73㎝, 오르세 미술관, 파리

클로드 모네(1840~1926)의 작품 중에는 ‘아르장퇴유’라는 파리 근교의 지명이 등장하는 그림이 많다. 이곳은 파리인들의 인기 주말여행지로 모네도 곧잘 찾았고 1871년부터 78년까지는 아예 이곳에서 살았기 때문이다. 이 시기의 그림 중 ‘아르장퇴유의 철도교(사진 3)’가 있다. 강의 푸른 잔물결 위로 하얀 돛을 단 작은 보트 둘이 한가롭게 떠있고, 그들 위로 다리가 서있다. 막 기차가 지나가는 참이어서, 기차가 뿜어내는 연기가 하늘에 뜬 옅은 구름과 뒤섞인다.

문소영 기자의 명화로 보는 경제사 한 장면 <12> 인상파 화가들의 일요일 오후

평화로운 전원에 콘크리트 다리와 연기를 마구 뿜어내는 기차라니. 이것을 비판하는 의미로 모네가 이 그림을 그린 걸까? 그렇게 해석하는 평론가들도 간혹 있다. 하지만 크리스토프 하인리히 같은 평론가들은 이 그림이 오히려 근대문명에 대한 예찬을 담고 있다고 본다. 19세기 중반부터 이런 기차가 파리와 아르장퇴유 같은 파리 교외를 한 시간 이내 거리로 연결하게 됐다. 덕분에 도심의 가난한 화가들도 이젤과 팔레트를 싸 들고 쉽사리 전원으로 나가서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됐고 그 점이 모네를 매혹했다는 것이다.

2 그랑 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1884∼6), 조르주 쇠라(1859∼1891) 작, 캔버스에 유채, 207.6×308㎝, 아트 인스티튜트 오브 시카고

19세기 후반에는 기차가 대중교통이 됐고 또 노동 조건의 개선으로 도시 노동자들도 약간의 여유가 생겼기 때문에 최소한 일요일 하루라도 가까운 교외에 나갈 수 있게 됐다. 이렇게 노동자부터 중산층까지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섞여 도시 근교 전원에서 여가를 즐기는 모습에서 어떤 이들은 새로운 아르카디아(전원적 낙원)의 가능성을 보았다. 물론 산업화 이전을 유토피아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도시인의 유흥지로 전락한 교외가 아닌 순수한 전원 속에서 농민들이 일과 여가의 구분 없이 평화롭게 일하던 시대가 훨씬 좋았다고 비판했지만 말이다.

여하튼 교외의 자연 못지않게 그곳에서 여가를 즐기는 사람들의 ‘현대적 풍경’이 모네를 포함한 인상주의(Impressionism) 화가들의 흥미를 끌었다. 이렇게 인상주의 미술은 일단 주제 면에서 근대의 변화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게다가 기법 면에서도 근대의 기술적 발전과 관련이 있다.

3 아르장퇴유의 철도교(1873), 클로드 모네(1840∼1926) 작, 캔버스에 유채, 60×99 ㎝, 개인 소장

인상주의 미술, 특히 모네 그림의 특징은 시시각각 변하는 빛과 대기의 현장감 넘치는 묘사와 그런 묘사를 위한 빠르고 대담한 붓질이다. 이런 그림은 야외에서 작업을 하면서 빛과 대기의 변화를 지속적으로 생생하게 접하지 않으면 그릴 수 없다. 1842년 휴대용 튜브 물감이 발명되지 않았다면 야외 작업은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다. 19세기 전반까지만 해도 야외에서 연필이나 초크로 스케치를 하는 화가들은 많았어도 유화를 그리는 화가는 거의 없었다. 유화 물감을 들고 나가는 것이 너무나 번거로웠기 때문이다.

모네는 튜브 물감을 들고 1873년 르아브르 항구로 나가서 유명한 ‘일출-인상’을 그렸다. 자유분방한 붓 터치 몇 개로 표현된 배의 그림자와 물결을 보면서 비평가 루이 르로이는 “덜 된 벽지도 이 그림보다는 완성도가 있겠다”고 악평했다. 그는 이 그림에 완성된 작품은 없고 제목 그대로 인상만 있으니 “인상주의”라고 불러주겠다고 했다. 그렇지만 모네와 친구들은 이 야유 섞인 명칭이 그리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고, 결국은 그들의 공식 명칭이 됐다.

‘일출-인상’의 바다부터 만년의 ‘수련’ 연작에 이르기까지 빛을 받아 시시각각 변하는 물의 모습은 모네의 주요 관심사였다. 모네는 아르장퇴유에서 낡은 보트를 하나 사서 조그만 수상 아틀리에로 꾸미고 그것을 타고 다니면서 빛과 물의 변하는 모습을 연구했다. 튜브 물감이 없었다면 이것도 불가능했으리라.

이렇듯 모네의 그림은 근대의 변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지만 그가 그런 변화에 어떤 의견을 지녔는지는 ‘아르장퇴유의 철도교’의 상반된 해석처럼 다소 애매모호하다. 모네보다 근대 풍경을 더 분명하게 예찬한 화가는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1841~1919)였다. 그의 ‘그네(사진 1)’는 몽마르트르의 한 공원에서 주머니 가벼운 파리 젊은이들이 여가를 보내는 모습과 그들의 소박한 즐거움을 묘사하고 있다.

이 그림에서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빛과 나뭇잎의 그늘이 인물들의 옷 위로 점처럼 떨어진다. 비평가 르로이는 인상주의 화가들과 원수라도 졌는지 이것을 보고도 “꼭 옷에 묻은 기름 얼룩 같다”고 악평했다. 하지만 저 빛과 그림자로 물든 여인의 하얀 드레스를 보고 있으면 저절로 화창한 날 숲을 거닐 때 느낄 수 있는, 그 나뭇잎 사이로 쏟아지는 따스한 빛과 나뭇잎의 서늘한 그림자 속 어지럽고 황홀한 감각이 살아난다. 그리고 그 속에서 여가를 즐기는 사람들의 즐거움까지 생생하게 전달되는 것이다.
그래서 또 다른 평론가 조르주 리비에르는 “이 젊은이들은 어떤 욕심도 없이 그저 그들의 삶과 쾌청한 날씨, 그리고 풀잎을 비추는 햇살을 즐기고 있을 뿐이다. 이들에게 무슨 걱정이 있을까. 이 매혹적인 그림을 보는 사람들의 머리에는 오직 한 단어, ‘행복’만이 떠오를 것이다”라고 찬사를 던졌다. 이렇듯 르누아르의 그림에는 근대 소시민의 여가에 대한 예찬이 담겨 있다.

도시 근교에서 여가를 즐기는 사람들을 묘사한 작품 중 가장 장대한 것은 32세의 나이로 요절한 화가 조르주 쇠라(1859~91)가 그린 ‘그랑드 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 (사진 2)’다. 가로 길이가 3m에 달하는 이 대작에는 파리 근교 센 강의 섬 그랑드 자트에 소풍 나온 다양한 계급의 남녀노소가 등장한다.

이 그림은 실제로 볼 때가 화집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감동적인 것으로도 유명하다. 실제로 보면 그림 표면 전체에 빛이 어른거린다. 여러 원색의 무수한 작은 점들이 촘촘히 붙어 있어 관람자의 눈에서 혼합되기 때문이다. 쇠라의 선배 인상주의 화가들도 색을 섞어 탁하게 만드는 것을 피하고 원색에 가까운 붓 터치를 병치시키는 방법을 사용했지만 쇠라는 거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이런 점묘기법(pointillism)을 썼다. 이것은 당시 화학이 발달했고 또 쇠라가 그것에 관심을 가지면서 가능했던 것이다. 비평가 펠릭스 페네옹은 이것을 신인상주의(Neo-Impressionism)이라고 했다.

그런데 쇠라의 그림 속 인물들은 유난히 감정 없이 뻣뻣하게 그려져 있다. 쇠라를 좋아했던 무정부주의 비평가들은 이것이 중산층의 틀에 박히고 속물적인 여가의 이상을 풍자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쇠라의 그림은 우리나라 아파트 광고에 인용된 적이 있다. 한국에서는 아파트 광고들이야말로 중산층의 삶에 대한 틀에 박히고 속물적인 환상을 극단적으로 묘사한다는 비판이 있는 걸 생각해 보면 재미있지 않을 수 없다.


영자신문 중앙데일리 문화팀장. 경제학 석사로 일상 속에서 명화와 관련된 이야기를 찾는 것이 큰 즐거움이다. 관련 저술과 강의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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