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김연아에게 … 올림픽 2연패 선배로서 주는 조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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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중인 비트.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기 전인 1988년 캐나다 캘거리 겨울올림픽. 동독에서 온 여성 피겨스케이팅 선수가 불타는 듯한 붉은 의상으로 은반 위에 섰다. 그 이름은 카타리나 비트. 관객은 숨을 죽였다.

비제의 ‘카르멘’에 맞추어 은반 위를 미끄러지듯 떠다닌 그의 점프는 완벽했고 미소는 고혹적이었다. 그가 금메달의 주인공이 된 건 해가 동쪽에서 뜨듯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84년 사라예보 겨울올림픽에 이어 두 번째 금메달이었다. 올림픽 여성 피겨스케이팅 사상 두 번째로 2회 연속 금메달이었다.

80년대 말, 패색이 짙어가던 공산권에 비트는 한 줄기 빛이었다. 북한은 그의 금메달 획득 후 기념우표까지 발행했다. 동독의 ‘김연아’를 넘어 전체 공산권의 김연아였던 셈이다.

그런 그가 현재는 한국의 적진에서 활약 중이다. 한국 평창, 프랑스 안시와 2018년 겨울올림픽 유치 경쟁을 벌이고 있는 독일 뮌헨의 유치위원회 위원장 이 카타리나 비트다. 그를 최근 싱가포르 청소년올림픽 현장에서 j가 단독으로 만났다.

# 카타리나 비트 vs 김연아

●한국인 후배 스케이터 얘기로 시작해 보자.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웃으며) 연아.”

●맞다. 올해 2월 밴쿠버 올림픽에서 김 선수를 극찬했는데.

“연아가 아름다운 스케이터로 성장하는 과정을 수년간 흐뭇하게 지켜봤다. 연아는 한국인으론 처음으로 피겨스케이팅 금메달을 따냄으로써 역사를 새로 썼다.”

●올림픽 2연패란 정말 힘든 성적인데.

“첫 올림픽 금메달을 땄을 때 나는 18세였다. 도전을 접기엔 너무 젊었다. 두 번째 올림픽 출전을 결정하는 건 너무도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연아도 아직 젊다. 이미 이룬 것도 많지만 앞으로 이룰 것도 많을 것이다.”

●2연패 후 프로로 전향했지만 94년 릴레함메르 겨울올림픽에 또 나와 7위를 했다.

“원하던 대로 프로로 전향해 성공도 했다. 하지만 올림픽 무대를 잊을 수 없었다. 메달 가능성이 없다는 건 나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도전했고 7위를 했다. 그리고 행복했다. 내가 첫 금메달을 땄던 사라예보 올림픽에서 꼭 10년이 흐른 때여서 더 강렬했던 것 같다. 통독 이후 여행 자유화가 이뤄져 내 부모님도 처음으로 경기를 보러 오셨다. 잊을 수 없는 경기였다. 경기를 치른 후 정신적으로 더 성장했다.”

●세 번째 올림픽 의상도 화제였다. 화려한 치마 의상이 아닌 바지를 연상케 하는 로빈 후드 복장을 입었는데.

“내가 개인적으로 매우 좋아한 프로그램이었다. 안무가와 함께 내가 스스로 선택한 아이디어였다. 당시 여성 피겨 선수들은 바지를 입는 게 금지돼 있었다. 그래서 대신 레깅스를 신고 임했다. 꼭 로빈 후드를 하고 싶었고, 새로운 실험을 감행하고 싶었다. 모차르트 역할도 했었다.”

●부모님이 관전하는 것도 의미가 컸겠다.

“물론이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수준의 연기를 펼칠 수는 없었다. 그래도 연기가 끝난 후, 내가 원하는 바를 끝까지 이뤄냈다고 느꼈다. 뿌듯했다. 올림픽 정신이란 것도 그런 게 아닐까. 목표를 향한 도전과 성취감 말이다. 메달이 목표가 아니다.”

# 나라의 무게를 짊어진 22세 스케이터

●동독 대표로 올림픽 2연패를 이뤘다. 부담이 상당히 컸을 텐데.

“나라 전체의 무게가 내 어깨에 얹힌 듯했다. 부모님, 친구들 그리고 국민 모두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다. 모든 선수가 압박을 느꼈겠지만 동독 출신인 나로선 더하지 않았나 싶다. 당시 동독 정부는 내가 2연패를 달성한다면 프로로 전향해 평생 스케이트를 탈 수 있도록 허가해 주겠다고 했다. 스케이팅은 내 모든 것이고, 그렇기에 압박이 더했다. 만약 2연패를 하지 못한다면 나는 그대로 은퇴해 내가 사랑하는 스케이팅을 못하게 되는 상황이었다. 재미있는 건, 나는 압박을 느끼는 상황에서 더 훌륭한 기량을 발휘한다는 점이었다.”

●경쟁을 즐기는 편이었나.

“연습보다 실전에 항상 강했다. 첫 대회를 일곱 살 때 나갔는데, 그때 실전에 더 강하다는 걸 알았다. 압박 속에 두려움을 갖고 경기를 시작하지만 그 두려움을 동력으로 더 실력을 발휘했다. 올림픽에 출전하는 선수들의 기량은 다들 훌륭하다. 심리적 강인함이 메달의 색을 가른다.”

# 성공한 사업가·배우·TV스타로

●그러다 프로로 전향했다.

“스케이트를 계속 타는 게 꿈이었다. 그래서 미국의 피겨 스타 브라이언 보이타노와 함께 ‘비트와 보이타노’ 아이스쇼 투어를 했다.”

●그리고 그 투어는 미국 뉴욕 매디슨 스퀘어 가든 공연 당시 매진을 기록하는 등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비트는 최근 김연아와 결별한 코치 브라이언 오서와도 함께 ‘카르멘 온 아이스’라는 TV쇼를 1990년 제작해 방영했다).

“스케이팅은 나의 인생에서 너무도 중요한 부분이다. 그래서 꼭 올림픽 무대가 아니더라도 계속하고 싶었다.”

●지난해엔 텔레비전 쇼에도 MC로 얼굴을 보였다. 1990년엔 텔레비전 스케이팅 쇼로 에미상을 탔고, 사업에도 성공해 2004년엔 ‘월드 비즈니스’상까지 탔다.

“내가 하는 일을 진심으로 하기 때문에 성공적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감사하게도 나는 하고 싶은 일을 고를 수 있는 사치를 누렸다. 금메달을 땄다고 평생의 행복이 보장되는 건 아니다. 모든 금메달리스트들을 보라. 그들은 계속 열심히 뚜벅뚜벅 걸어간다. 그래야 더 많은 것을 성취할 수 있다. 연아도 마찬가지다. 서두를 필요는 없지만 계속 앞으로 걸어가야 한다.”

●최근엔 로버트 드니로와 함께 영화 ‘로닌’에도 출연했다. 연기로도 영역을 넓히고 있는데.

“지난해엔 연극무대에도 데뷔했다. 작지만 잘 알려진, 매우 중요한 역할이다. 스케이팅과도 비슷하다고 느꼈다. 관객과 호흡하면서 연기를 하기 때문이다. 새로운 경험이었고, 앞으로도 계속하고 싶다.”

# 뮌헨 vs 평창 vs 안시

●2018년 겨울올림픽 유치 경쟁을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현재까진 뮌헨이 평창·안시와의 삼파전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다. 유치위원회에서 위원장을 맡고 있는데.

“세 도시 모두 강력한 후보다. 이것도 경쟁이자 게임이다.”

●아까 실전에 더 강하다고 했는데, 개최지 경쟁도 그럴까.

“(웃으며) 언제 어디에나 방해물은 있다. 그걸 뛰어넘어야 목표를 이룰 수 있다. 스케이터로서 빙판 위에 섰을 때 나는 스스로에 대한 통제력을 유지했고, 바로 이 점이 금메달이라는 목표를 이룰 수 있었던 요인이다. 이건 인생의 모든 부분에서 그렇고, 겨울올림픽 후보지 선정에서도 마찬가지다.”

●내년 7월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의 IOC 총회에서 겨울올림픽 후보지가 결정된다. 최종 프레젠테이션에 비트 위원장 본인이 나서게 되나.

“아하, 지금 평창을 위해 비밀을 캐내려고 하는군(웃음). 프레젠테이션도 중요하겠지만 그 외 모든 과정 하나 하나가 모두 중요하다. 이번 2018년 겨울올림픽 개최지 선정은 특히나 더 치열하다. 내년 더반 총회까지 1년이 채 안 남았다. 내게 이번 경쟁은 의미가 크다. 유치위 자리를 제의받았을 때도 한순간의 망설임 없이 ‘예스’했다. 살아오면서 숱한 경쟁을 겪어왔지만 이번은 더하다. 이 경쟁엔 단 한 명의 승자가 있을 뿐이니까. 은메달도 동메달도 없다.”

싱가포르=전수진 기자(sujiney@joongang.co.kr)



j 칵테일>>

매진된 비트의 누드 사진

카타리나 비트의 누드 사진 10장이 1998년 미국 성인잡지 플레이보이 12월호에 게재되자 전 세계는 충격에 빠졌다. ‘사회주의의 가장 아름다운 얼굴’로 불리던 그가 상업주의를 대표하는 미국 잡지에 전라를 드러낸 것이 일대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불과 얼음’이라는 제목이 붙은 비트의 누드 사진은 미국 전역의 신문 가판대에 진열되자마자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미국의 섹스심벌이었던 메릴린 먼로 이후 두 번째 매진을 기록했다. 플레이보이 발행인에게는 매일 수백 통의 e-메일과 팩스가 쇄도했다. 비트의 누드 사진 권리를 사겠다는 세계 각국의 출판업자들의 제안서였다.

‘빙판의 요정 비트가 100만 달러에 자본주의에 팔렸다’는 비판도 쏟아졌다. 하지만 비트 본인은 당당했다. 그는 “올림픽 금메달에 이어 전 세계에서 또 다른 큰 반응을 얻게 되리라 생각한다. 멋진 일이다. 난 이들 사진이 자랑스럽다”고 인터뷰했다. 왜 누드 사진을 찍었느냐는 질문에 그는 “내 남자친구가 에로틱한 사진들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물론 농담이다”며 “난 내 몸에 대해 아주 편안한 느낌을 갖고 있다. 내 스케이팅하는 모습을 본 팬 중 일부는 충격을 받을 것 같다”고 밝혔다. 비트는 이후 올림픽 때마다 여성 스포츠 스타들의 누드 사진 촬영 열풍에 불을 지폈다.

최원창 기자(gerrard1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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