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추억] 광복군 자원 입대 … ‘까스활명수’선보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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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약품의 가송(可松) 윤광열(사진) 명예회장이 26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87세.

고인은 서울 출생으로 1948년 고려대 법학과를 졸업한 뒤 이듬해 동화약품에 입사해 지금까지 대한민국 제약사에 한 획을 그은 인물로 평가받는다. 대학 재학 중에는 선친인 보당(保堂) 윤창식 사장이 중국 상하이 임시정부에 독립자금을 대던 동화약품의 애국정신을 이어받아 광복군에 자원 입대해 독립운동에 앞장서기도 했다.

다음달 창립 113주년을 맞는 동화약품은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제약회사로 꼽힌다.

고인은 73년 제7대 사장에 취임했으며 77년부터 회장을 역임했다. 그는 67년 까스활명수를 발매해 액제 소화제 시장을 휩쓸었다. 그 뒤 지금까지 활명수는 액제 소화제 분야 시장점유율 1위를 기록하고 있다. 60년대에는 까스명수·활명회생수·활명액·생명수 등 유사제품이 난립했고, 탄산음료가 크게 유행하면서 70여 년이 된 활명수의 입지를 흔들었다. 그러자 당시 상무이던 고인은 “활명수에 탄산가스를 주입해 까스활명수를 만들어도 청량감만 더할 뿐 약효에는 변화가 없을 것”이라며 까스활명수 발매를 적극 주장했다. 결국 최대 경쟁제품이던 까스명수를 확실히 제압하고 액제 위장약 시장에서 선두자리를 굳히게 됐다.

고인은 사장 취임 직후 희귀약품센터와 중앙연구소의 설립에 심혈을 기울였다. “병을 고쳐 생명을 살리는 약을 만들라”는 선친의 유지를 어떻게 이어갈지 고심하던 터였다. 당시 국내에서는 진단이 내려져도 의약품을 구하는 것이 어려웠다. 센터를 세우더라도 이윤을 남길 수 없었다. 이때 고인은 “약을 구하지 못해 고통받는 사람이 없었으면 좋겠다”며 국내 첫 희귀약품센터를 세웠다. 또 새로운 도약을 위해서는 신제품 개발연구와 기술자립이 절실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기획관리실 등 여러 부서에 나뉘어있던 연구·개발·합성 부문의 인력을 합쳐 73년 중앙연구소를 발족했다.

고인은 78년 생산직 사원들의 시간제 급료제도를 폐지하고 국내기업으로는 처음 ‘전 사원 월급제’를 시행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처럼 남을 배려하는 고인의 정신은 가송재단 설립으로 이어졌으며, 국가로부터 철탑산업훈장과 국민훈장 모란장 등을 받았다.

유족은 도준(동화약품 회장)·길준(동화약품 부회장)·금준 씨 등 2남1녀가 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에 마련됐으며, 영결식은 30일 오전 9시30분 경기도 기흥의 동화약품 연구소에서 열린다.

심재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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