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탁입사 광주가 더 심했을뿐" 다른 공장서도 벌어진듯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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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기아자동차 광주공장의 '취업장사' 비리 의혹은 ▶본사가 묵인했는지▶채용비리의 규모는 어느 정도인지▶본부 노조가 광주지부의 비리를 알고 있었는지 등으로 확대되고 있다. 광주공장 노사가 생산계약직의 채용비리에 개입한 것은 여러 정황과 증언을 통해 사실로 굳어지고 있다. 박홍귀 기아차 노조위원장은 23일 "회사(광주공장)에 연고가 없는 사람은 애당초 입사가 불가능했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기아자동차 노조가 사내에 만연한 인사청탁 관행을 시정하기 위해 사측에 인사청탁을 통한 채용의 중단을 촉구한 공문.[연합]

◆ 본사의 묵인 의혹=본사 인력관리팀 핵심 관계자는 "지난해 7월부터 노조 게시판 등에 채용비리 문제가 제기됐으나 광주공장 측에 전권을 일임했다"고 말했다. 본사 차원에서 비리 내용을 파악하고 있었으나 회사의 대외 이미지 등을 고려해 광주공장에서 조용히 처리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박홍귀 본부노조 위원장은 "1998년 현대자동차그룹이 기아차를 인수한 뒤 노조의 발목을 잡기 위해 인사청탁을 부추겼다. 광주공장의 경우 정도가 심했다"고 주장했다. 노조에 계약직 추천권을 주는 관행은 광주 이외의 지역에서도 회사 차원에서 오래 전부터 있었다는 설명이다. 이에 따라 본사는 노사관계 안정을 위해 채용비리를 필요악으로 인식하고 방치했다는 의혹에서 벗어나기 힘든 상황이다. 광주공장뿐 아니라 다른 공장도 채용비리의 가능성이 있었음을 시사하고 있다.

◆ 채용비리 규모는=광주공장이 지난해 5~7월에 뽑은 생산계약직은 모두 1079명. 이들 중 채용기준(30세 미만, 고졸 이상)에서 벗어나는 부적격자가 399명에 달한다고 회사 측은 밝혔다. 노조가 이 가운데 20~30%에 대해 추천권을 행사했을 경우 1079명 중 210~320여명이 채용될 수 있다. 나머지 부적격 채용자 100여명은 다른 경로를 통해 입사했다고 볼 수 있다. 이에 대해 광주공장 관계자는 "광주시청.경찰서 관계자와 국회의원 보좌관 등이 청탁을 해온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 본부 노조도 알았다=기아자동차 본부 노조는 지난해 말 광주지부의 생산계약직 채용 비리를 파악하고 있었다. 기아차 노조는 지난해 12월 13일 충북 보은에서 대의원대회를 열고 광주지부 대의원 손모씨의 제의에 따라 '입사 진상규명 및 대책위 수립'이란 안건을 놓고 논의했다.

이어 대의원들은 같은 해 12월 20일과 지난 11일 소하리 공장에서 같은 안건을 놓고 격론을 벌였다. 이 자리에 참석했던 대의원 박모(38)씨는 "'오래전부터 관행처럼 이뤄진 일이다'며 물타기를 시도하는 등 계파에 따라 입장이 크게 달랐다"며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대의원들은 19일에야 대책위 구성에 합의했으나 이날 오후 광주지검의 내사 진행 사실이 발표되면서 진상규명은 무산됐다. 이번 사건을 수사 중인 광주지검은 기아자동차 노조 광주지부장 정씨의 신병을 확보하는 대로 개인 비리와 함께 회사의 개입 여부를 집중 조사할 방침이다.

광주=천창환 기자, 최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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