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진당송원 국보전' 대륙혼 담긴 書畵… 中 '문화대국' 선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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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지금 중국 상하이(上海) 박물관에서는 '진당송원(晋唐宋元)서화국보전(書畵國寶展)'이라는 이름으로 중국 건국 이래 최대 규모의 특별전 (내년 1월 6일까지)이 열리고 있다. 상하이박물관 개관 50주년으로 기획된 이 특별전의 부대 행사로 국제학술대회도 개최돼 중국은 물론이고 세계 학계의 이목을 집중시킨다는 평이다. 본지는 유홍준(명지대)교수의 리뷰를 통해 이 전시회가 지닌 의의를 알아보았다.

편집자

그것은 장사진(長蛇陳)이 아니라 장용진(長龍陳)이라는 표현이 더 적절했다. 22일 상하이에 도착하자마자 박물관으로 달려가니 관람객의 긴 행렬이 박물관 뒷문까지 족히 1백여 m는 늘어서 있었다. 그리고도 사람들이 계속 모여들자 2시쯤에는 한 박물관 관계자가 '당일만원(當日滿員)'이라는 푯말을 들고 나왔다.

상하이 박물관 오후2시 매진

나는 옳다구나 하고 그에게 다가가 사정을 말하여 다행히도 먼저 박물관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러나 박물관 안에서도 제1전시실로 들어가기 위한 긴 줄의 끝이 보이지 않았고, 머리를 쓴다고2층의 제 2전시실로 올라갔더니 여기는 송나라 장택단(張澤端)이 그린 유명한 풍속화 '청명상하도(淸明上下圖)'를 보기 위한 행렬이 3층 복도까지 뻗어 있었다.

결국 나는 원나라 그림부터 역순으로 관람하고 이튿날 아침 일찍 가서야 제대로 볼 수 있었다. 사실 이번 전시회는 동양미술사를 전공하는 사람이면 놓칠 수 없는 획기적인 특별전으로 중국 사람들로서도 처음 갖는 대규모 서화전이다. 그네들의 과장적 어법을 빌리면 '천년에 한번 있을 공전(空前)의 기회'다.

서성(書聖)이라 일컬어지는 4세기 동진(東晋)의 왕희지(王羲之), 6세기 당나라의 구양순(歐陽詢), 11세기 송나라 소동파(蘇東坡), 13세기 원나라 조맹부(趙孟), 이들은 모두 한 시대를 풍미한 서체를 창출한 당대의 대가들이다. 이들의 글씨를 한 자리에서 비교하며 감상한다는 것부터 여간 감격스런 일이 아니었다.

역시 도판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원작을 대하니 비로소 왕희지가 왜 왕희지인지를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청나라 한 서예 이론가가 왕희지는 글씨를 운(韻)으로 쓰고, 구양순은 법(法)으로 쓰고, 소동파는 의(意)로 쓰고, 조맹부는 태(態)로 썼다는 평에 절절히 공감할 수 있었다. 또 그런 시각으로 보아야 글씨의 참맛이 살아났다.

왕희지·구양순 한자리에

개인적으로는 원나라 선우추(鮮于樞)의 작품을 볼 수 있는 것이 퍽 반가웠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선우추가 글씨를 연마하던 어느 비 오는 날 진흙에 빠진 수레를 안간힘으로 끌고 있는 인부를 보면서 글씨를 터득하여 "남에게 싫증나지 않는 개성적인 글씨"를 남겼다고 했다. 그러나 그의 작품은 전하는 것이 아주 드물다고 했는데 이번 전시에는 길이 5m의 대작이 출품되어 나는 그 진흙 속의 일부를 생각하며 한참을 떠나지 못했다.

그림으로 말할 것 같으면 수나라 전자건(展子虔)의 '유춘도(遊春圖)', 당나라 주방(周昉)의 '사녀도(仕女圖)', 송나라 곽희(郭熙)의 '유곡도(幽谷圖)', 휘종황제의 '서학도(瑞鶴圖)', 원나라 황공망(黃公望)의 '천지석벽도(天地石壁圖)' 등 중국 회화사에 빠짐없이 나오는 명작들이 모두 출품되었다. 특히 10세기 남당(南唐)의 임금이 재상 한희재(韓熙載)가 밤에 기녀들과 노는 모습을 그려오라는 명을 내려 화가 고굉중(顧中)이 그린 '한희재야연도(韓熙載夜宴圖)'는 길이 3m의 장폭으로 채색인물화의 극치를 보여주는 아름답고 재미있는 명작이었다.

그런가 하면 초기 산수화에서 곽희는 화북(華北)지방의 험준한 산을 모델로 삼았음에 비하여 강남의 습윤(濕潤)한 산수를 그려 중국 산수화의 양대산맥을 이루었다는 동원(董源)의 대작들이 3점이나 출품되어 회화사를 전공하는 나로서는 더 없는 안복(眼福)을 누릴 수 있었다. 어디 그뿐인가. 휘종황제의 그림은 어쩌면 그리도 가녀린 느낌을 주고, 남송시대 하규(夏珪)와 마린(馬麟)의 산수는 어찌도 그처럼 산은 가물거리고 물은 넘칠 듯 하던지. 이번 전시회에 출품된 작품은 고궁박물원 28점, 랴오닝성박물관 16점, 상하이 박물관 26점 등 총72점이다. 숫자로 치자면 대수로울 것 없으나 그 질로 따진다면 모두 일당백(一當百)의 명품으로 그 중 몇 점만 있어도 훌륭한 기획전을 꾸밀 수 있는 것이다. 이번 전시회에는 방대한 도록이 제작되어 한화로 권당 1백만원이나 했다는데 이미 매진되어 나는 겉장도 구경하지 못하고 돌아왔다. 어느새 중국은 양보다 질을 내세울 줄 아는 수준으로 올라서 있다.

본래 중국의 국보·보물들은 장개석이 대만으로 도망치면서 모두 싣고 갔기 때문에 대부분 타이베이(台北)의 고궁박물원에 수장되어 있고 본토에는 별로 남은 것이 없는 것으로 생각되어 왔다.

전시회 도록 권당 1백만원

또 1982년 미국의 메트로폴리탄 뮤지엄, 클리블랜드 뮤지엄, 일본의 도쿄박물관 등 외국의 박물관들이 연합 전시한 '중국회화 8대 왕조전'에 워낙 명화들이 많이 출품되어 대륙에 남아 있는 것이 별것이겠냐 싶은 생각도 들게 했다. 더욱이 중국은 문화혁명이라는 야만적인 문화파괴를 스스로 자행한 '10년동란(十年動亂)'의 암흑 속에 빠져 있어 제대로 된 전시회 한번 가져보지 못한 상태였기 때문에 크게 주목받을 일이 없었다.

"민족 자신감 드높이자" 구호

그러나 잠자던 용이 서서히 꿈틀거리며 점차 급속한 속도로 일어나더니 마침내는 이처럼 장대한 전시회를 꾸미며 누가 뭐래도 중국은 중국이고, 본토는 본토라는 자랑을 물증으로 내놓고 있는 것이다. 전시장에 붙어 있는 특별전 취지문에는 "민족문화의 정화(精華)를 받들어(引揚) 민족 자신감(自信心)을 제고(提高)하자"고 쓰여 있고, 전시도록의 서문에는 "국보를 잊지 말고, 국보를 사랑하자(勿忘國寶 珍愛國寶)"는 구호가 느낌표와 함께 실려 있다. 중국은 그렇게 일어나고 있다. 경제뿐만 아니라 문화적으로 이렇게 성숙해 있으니 머지 않아 중국으로 들어간 한류(韓流)는 퇴조하고 거대한 한류(漢流)가 조만간 밀려올 것 같은 불길한 예감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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