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는 숫자일 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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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7면

대한항공 심이택(63)사장은 1999년 4월 사장에 임명된 후 3년8개월여 동안 한번도 휴가를 간 적이 없다. 게다가 매일 오전 7시쯤 출근해 잠시도 쉬지 않고 일만 해 임직원들은 "63세라는 나이가 믿어지지 않는다"고 혀를 내두른다.

재계도 외환위기 이후 수년간 세대교체되면서 요즘은 40∼50대 최고경영자(CEO)가 대부분이다. 60대 이후 CEO들을 찾아보기란 쉽지 않다. 그런데도 여전히 일선에서 '노익장'을 과시하며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60대 CEO'들은 공통점이 있다. 성격이 긍정적·낙천적이다. 스트레스를 덜 받기 때문에 50대 못지 않은 체력과 정신력을 유지하면서 조직을 이끌고 있다. 게다가 풍부한 경험까지 갖춰 금상첨화다.

'실버 CEO'가 가장 많은 그룹은 롯데다. 대표이사급 33명 가운데 60세 이상이 16명이나 된다. 50대만 되면 퇴출을 걱정하는 다른 회사와는 사뭇 다르다. 보수적인 경영관과 한번 뽑으면 웬만해선 내치지 않는 인사정책 때문이다.

L&L(롯데 러시아 현지법인)의 장성원(71) 사장이 최고령이다. 주력 계열사인 롯데쇼핑과 호텔롯데 대표이사만 20년 가량 했다. 신격호(80)그룹 회장을 30년 가까이 모셔 辛회장의 말을 가장 잘 이해하는 사장으로 꼽힌다.

호텔롯데 권원식(67) 사장은 호텔 설립 멤버다. 이후 홍콩 호텔 등에서 지배인을 지내다 지난해 실버 CEO로 재입성했다. 영어·일어에 능통한 權사장은 영원한 호텔리어로 불린다. 휴일에도 회사에 나와 음식 상태와 서비스를 점검한다.

직원들의 의견을 존중하고 합리적으로 결정하기 때문에 신세대와 말이 통하는 사장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하루 두번 이상 매장을 돌아다니면서 3∼4㎞를 걷는 것이 건강 비결"이라며 "성실하게 일하고 현장을 중시한다는 것이 60대 CEO의 공통점"이라고 말한다.

롯데건설 임승남(64) 사장은 타고난 강골로 요즘도 폭탄주 10여잔은 너끈히 마신다. 외환위기 후 '낙천대'라는 아파트 브랜드로 롯데건설을 일약 선두권 건설업체로 성장시켰다.

이밖에 롯데제과 한수길(61)사장, 롯데알미늄 김두봉(63)부사장, 롯데상사 백효용(62)부사장, 롯데햄·우유의 남정식(62)부사장, 롯데월드 오용환(62)부사장 등도 이순(耳順)을 넘긴 현역들이다.

LG그룹의 60대 CEO로는 LGCI 성재갑(64) 부회장·LG전자 중국지주회사 노용악(62) 부회장·LG홈쇼핑 최영재(60)사장 등이 꼽힌다. 成부회장은 국내 화학산업을 이끈 주인공이다. 요즘은 화학계열사를 챙기는 것 외에 '이공계 살리기'에도 적극 앞장서고 있다.

盧부회장은 중국 내수 시장에서 CD롬 드라이브 1위, 전자레인지 2위를 기록하는 등 LG의 중국 진출을 진두 지휘하고 있다. 崔사장은 97년 말 대표 취임 후 1년 만에 LG홈쇼핑을 국내 1위 업체로 성장시켰다.

SK그룹은 SK글로벌 김승정(61) 부회장과 SK텔레콤 조정남(61) 부회장이 대표적인 '실버 CEO'다.50대 사장들과 함께 계열사의 대표이사직을 맡아 직접 경영을 챙기며 전문가로서 조언을 아끼지 않고 있다.

金부회장은 풍부한 독서량과 해박한 지식으로 무역 관련 업무를 총괄하고 있다. 점심시간에는 구내 식당에서 평사원들과 어울려 식사를 할 정도로 소박하다.

삼성그룹에선 삼성엔지니어링 양인모(62) 사장이 유일한 60대 CEO다. 98년 상암동 월드컵 경기장 공사를 수주했을 뿐 아니라 설계·시공을 합쳐 공기를 2개월 앞당겨 업계를 놀라게 했다. 해외 수주의 귀재로 통한다.

현대차그룹은 정몽구 회장과 경복고 동창인 INI스틸 유인균(62)회장이 유일하다. 강원산업과의 합병을 무리없이 추진하는 등 우량 철강회사를 만든 공로로 올해 산자부에서 주는 금탑산업훈장을 받았다.

김태진 기자

tj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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