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핵개발 뜻 없다더니…" 정부, 美·中 등과 다각협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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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북핵 사태를 보는 정부의 눈길이 심상치 않은 방향으로 옮겨가고 있다.

23일 북한의 사용후 핵연료봉 저장시설과 방사화학실험실(재처리시설)에 대한 봉인을 파손했다는 소식을 접한 고위 당국자는 "핵 개발과 무관하며 전력 생산을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던 북한 측의 주장과 거리가 먼 행동"이라며 "사태가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국면으로 번질 수 있다"고 말했다. 하루 전 영변 5㎿e 원자로 재가동 때보다 훨씬 수위가 높아졌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과 노무현(盧武鉉)대통령당선자의 이날 오찬 회동에서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이 핵심 의제로 오른 것도 같은 맥락이다.

주한 미대사관 채널을 통한 한·미 협의 등 북핵 문제에 대한 국제 사회와의 공조도 부쩍 강화됐다. "중국·러시아 측과는 상당한 고위급을 포함해 다양한 협의가 이뤄지고 있다"고 당국자는 설명했다.

정부는 지난 10월 핵 문제가 불거진 이후 북한 당국이 미국의 입장에서 점점 멀어지는 극단적 선택으로 수렁에 빠지고 있다고 판단한다. 평양 권력 내부의 상황 판단이 잘못됐거나, 정세는 제대로 보고 있으나 외교 전술을 잘못 짤 수 있다는 진단이다. 이런 북한을 제자리로 돌려 세우려면 국제 공조를 통한 평화적 해결 외에 대안이 없다는 설명이다.

물론 정부는 북한이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고 보지는 않는다. "위험선(Red-line)은 여러개 있을 수 있다. 어떤 라인은 넘었지만 아직 다른 큰 라인은 밟지 않았을 수 있다"는 신중한 입장이다. 특사 파견은 물론 구체적 대북 제재 조치는 논의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는 여론 추이에도 적잖은 신경을 쓰고 있다. 외교부 당국자는 "이번 사태는 어디까지나 북한의 고농축 우라늄을 통한 핵 개발 시인 파문으로 빚어진 것임을 분명히 한다"고 말했다.

북한의 단계적 핵 합의 위반 움직임이 사용후 핵연료봉에 손을 대는 상황까지 갔는데도 정부의 대응이 지나치게 미온적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IAEA의 사찰관 활동이 이뤄지는 등 안전조치가 유지되고 있다"고 강변하며 미더운 대응조치 대신 '유감 표명'수준에서 맴돌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영종 기자

yj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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