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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염과 머리털 기르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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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얼마 전부터 머리와 수염을 깎지 않았다. 이제 머리카락은 제법 길어져 묶을 만하게 되었고, 수염도 자라서 자못 제자리를 잡았다. 그러나 주위의 반발 또한 거세지고 있다. 아마도 수염 하나 없이 깨끗하게 정리된 고속도로와 같이 밋밋한 턱과 단정한 머리를 가지지 않은 어설픈 내 모습에서 실망과 위협, 또한 분노마저 느꼈으리라.

지지난해 가을 한국기독교학회에서 발표할 생명과 생태를 주제로 한 논문을 준비하고 있었다. 평소에 익숙했던 주제라 쉽게 끝내리라 예상했는데, 도무지 글이 나가지 않았다. 왜 그럴까 고민하던 중 묘한 체험을 한 것이다. 한순간 내 몸이 내게 이런 말을 했다. "네가 지금 생태계에 대한 글을 쓰고자 하는 모양인데, 네 몸의 소리조차 듣지 못하는 귀머거리인 주제에 뭐 지구의 몸을 운운하려고 해. 쯧쯧." 문득 깨닫는 바가 있었다. 내 몸의 소리, 진정한 나의 소리를 듣고자 한 적이 과연 있었던가? 내 몸에게 자신을 표현할 기회를 준 적이 있었던가? 바로 지금 여기서 살아 숨 쉬고 있는 내 몸을 들여다보고 그 존재의 소리를 듣기보다 마냥 바깥만 바라보며 바쁘게 달려가고 있지 않았던가?

수염과 머리털은 사실 내 몸이 살아 있다는 증표이고, 내 몸이라는 생태계에서 중요한 삼림과 수목 같은 존재다. 그러나 지금까지 아침마다 으레 이 몸의 수목들을 무자비하게 파괴하는 난개발 공사를 감행해 왔던 것이다. '신체발부(身體髮膚)는 수지부모(受之父母)라 불감훼손(不敢毁損)이 효지시야(孝之始也)'라는 '효경'의 지혜를 이제야 깨달은 듯했다. 자신의 머리털과 수염, 곧 자기 몸을 사랑하지 못하는 자는 부모를 사랑할 수 없고, 이웃을 사랑할 수 없으며, 나아가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는 더욱 더 불가능하리라. 하물며 매일 매일 자기 몸의 생태계를 죽으라고 파괴하면서도 깨닫지 못하는 자가 어찌 생명과 지구 생태계의 위기에 관해 말할 수 있겠는가?

요즘 나는 매일 조금씩 자라나는 머리털을 빗으며 내가 살아 있음을 확인한다. 수염을 쓰다듬으면서, 살아서 생동하고 있는 내 몸의 존재를 느끼고 삶의 희열을 느낀다. 그들을 자라나게 하는 오묘한 생명의 실재를 느끼고,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디지털 과학기술이 만들어 낸 가상의 사이버 세계가 우리의 오관을 극도로 자극하고 진짜를 대신해 가짜 몸이 활개를 치게 하는 세상에서 나는 오늘도 긴 머리를 빗으며, 손에 까칠까칠한 촉감을 주는 수염을 만지며 내가 분명히 살아 있음을 확인한다.

제 몸의 소리도 모습도 기계적 시뮬레이션을 통해서만 듣고 볼 수밖에 없이 돼버린 현대인들. 이제 호모 사피엔스는 생명의 존재가치조차 사이버세계에 종속시켜 스스로 기계인간 사이보그가 되려는가? 더욱이 최근 몇몇 과학자와 정부는 인간 유전자와 관련된 생명시장에 진출할 것을 국제적으로 선언했다. 아직 다른 나라들이 생명에 대한 도덕적 논쟁에 휘말려 머뭇거리고 있을 때 재빨리 뛰어난 젓가락 기술로 인간의 세포핵을 끄집어내어 배아줄기세포를 복제하고, 경제적 이익을 앞세워 서둘러 국가적 프로젝트로 감행하는 모습을 보고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부모에게서 받은 몸을 훼손하지 않고, 개미집조차 부서뜨릴까 피해 걸었던 동방예의지국의 우리 조상들. 그토록 고집스럽게 주어진 생명을 보호하고 존중하려 했던 한국인의 생명 경외 사상은 어디로 간 것일까? 우리가 경제적 동물이 돼 어느 민족보다 먼저 생명윤리 불감증에 빠진 기계인간으로 전락해가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나는 오늘도 아침에 일어나 머리를 빗고, 수염을 쓰다듬으면서 내가 살아 있음을 확인하고 생명의 오묘함을 새롭게 느껴본다.

김흡영 강남대 교수·신학

◆약력: 서울대 공대, 미국 프린스턴신학대학원.버클리연합신학대학원.하버드대 세계종교연구소, 강남대 신학대학(원)장, 세계과학종교학회 정회원, 저서 '도의 신학'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