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한반도 전문가 4人 인터뷰]"SOFA 개선 안하면 미국 더 큰 문제 직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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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미국인들은 19일 아침(현지시간) 잠에서 깨어나 '노무현(盧武鉉) 당선'이라는 소식을 들었다. 盧당선자가 이회창(李會昌)후보에 비해 미국에 훨씬 단호한 목소리를 내왔다는 점에서 그의 등장은 빅 뉴스였다. 본지는 미국의 한반도 전문가인 도널드 그레그 전 주한 미 대사, 돈 오버도퍼 존스 홉킨스대 교수, 래리 닉시 의회조사국 한반도담당 연구원, 조엘 위트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 선임연구원의 분석과 전망을 들어보았다. 이들은 "한·미관계가 새로운 변화의 시대로 접어들었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盧후보의 당선은 미국에 어떤 의미인가.

▶그레그=투표 전 반미시위가 휩쓸었지만 나는 결과가 '반미투표'라고 보지는 않는다. 한국인들은 반미보다는 남북관계의 개선을 지속적으로 추구하는 친한국(pro-Korean) 지도자를 뽑은 것이다. 멋진 민주주의다. 축하한다. 한국의 젊은 세대는 소위 풍요의 시대에서 성장했고 북한으로부터 특정한 위협이 있다고 느끼지 않는다. 그래서 미군이 왜 한국에 주둔하는지를 따진다. 나는 미군이 한국의 이익 때문에 주둔한다고 믿지만 미국은 그런 점을 한국인들에게 보다 잘 설명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오버도퍼=한국에는 엄청난 세대적 변화이자 역사의 전환점이다. '3김(金)시대'가 가고 젊은 세대가 전면에 등장했다. 이들은 한국전쟁을 기억하지 않고, 한·미 주둔군지위협정(SOFA) 같은 이슈에 국가적 자존심이 걸려있다고 생각한다. 이제 한·미관계를 조정하는 데 미국이나 한국 모두에 시간이 걸릴 것이다.

▶닉시=한국인들은 선거를 통해 미국에 강력한 메시지를 보냈다. 다수는 주한미군의 행동양식과 미국이 여러 사건을 다루는 방식이 오만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제 이를 바꾸지 않으면 미국은 더 큰 문제에 부닥치게 될 것이다.

-한국의 김대중 대통령과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2001년 첫번째 만남에서 대북문제를 놓고 큰 의견대립을 보였다. 그후 양국관계는 회복되지 않았다. 국민의 많은 지지를 업은 盧당선자는 金대통령보다 더 단호할 수 있다. 한·미관계는 어떻게 전개될까.

▶위트=두 정상은 金·부시 사례를 잘 기억하므로 그런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많은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 盧후보의 당선으로 북한은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새로운 제안도 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북한문제에 있어 남한의 역할이 커지게 되고 미국이 일방적으로 강경책을 밀고 나갈 수는 없게 될 것이다. 예를 들어 미국이 대북 경수로 지원중단 같은 문제에 盧후보의 동의를 얻는 일이 어려워질 것이다. 이렇게 보면 盧후보의 당선으로 한반도 위기에 '휴식시간(break)'이 생겼다고 볼 수도 있다.

▶그레그=부시 대통령이나 盧당선자 모두 현명한 사람이기 때문에 첫 회담을 갖기 전 충분한 시간을 가질 것이다. 두 사람 모두 서두르지 않을 것이다. 盧후보의 당선은 부시 행정부가 대북정책을 새롭게 출발(fresh start)하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오버도퍼=나는 지난 7월 서울에서 盧후보를 인터뷰했다. 그는 '앞으로 한·미관계에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한국이 급속히 변하고 있으므로 미국도 따라서 변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당시 미·북 대화가 이뤄지지 않고 있었는데 盧후보는 미국이 북한과 대화해야 한다는 원칙을 강조했다.

▶닉시=우선 미국은 한국인의 요구를 중시해 주한미군의 운영방식을 재검토하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아울러 한국인들은 미국이 대북정책에서 유연해지기를 원한다. 미국은 노력하면 한반도 정책의 근본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이런 유동성을 수용할 수 있을 것이다.

-당장 북핵 문제 해결이 시험대에 오를 것 같다. 盧후보는 미국이 북한과 대화해야 한다고 하는데 미국은 북한이 핵 개발 프로그램을 없애지 않는 한 대화를 않겠다고 한다.

▶위트=개인적으로는 미국이 보다 적극적으로 대화에 나서야 한다고 생각한다. 盧후보의 당선뿐 아니라 여러 상황이 미국으로 하여금 대화를 하도록 압박하고 있다. 그러나 미 행정부가 盧후보의 요구에 어떤 반응을 보일지는 지켜봐야 한다.

▶닉시=미국이 북한과 대화해야 할 것인가의 문제는 한·미간에 보다 시끄러운 대립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 미국은 북한과 대화하지 않겠다는 현재의 정책 때문에 약간의 곤경에 처해 있다. 대화를 하지 않음으로써 북한·중국·러시아에 영향을 미치고, 미국의 대한·대일 정책 조정 능력도 약화되고 있다.

워싱턴=김진 특파원

jin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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