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100년 전의 8월과 100년 후의 8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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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이 문장을 소리 내어 세 번만 읽어보라. 등골이 오싹하지 않은가. 별 생각이 없다면 이 문장을 패러디하여 ‘한국의 대통령은’으로 시작하여 읽어보라. 굳이 일본이란 국명을 고집하지는 않는다. 어느 나라도 상관없고 북한이 될 수도 있다, 그래도 아무 생각이 없는가.

국가의 주권이 바뀐다는 것은 직장을 옮기는 수준이 아니다. 우리는 100년 전인 1910년 8월 22일 이 문장을 필두로 하는 한일병탄조약으로 완전한 식민지(植民地)가 됐다. 식민은 정복한 나라에 자국의 국민을 이주시켜 살게 한 경우 그 이주민을 말한다. 식민지는 그런 식민이 들어와 사는 나라, 곧 국권을 잃고 정복자에게 주권을 빼앗긴 나라다.

100년 전 우리는 식민지가 됐고 식민국인 일본의 식민들이 우르르 몰려와 반만년의 찬란한 역사를 짓밟았다. 그들이 짓밟은 것이 어찌 과거뿐이겠는가. 현재를 망가뜨렸고 미래를 어둡게 했다. 그 시간이 36년, 1945년 8월 15일에야 식민들이 물러가고 해방이 되었지만 그 상처는 아직 다 아물지 않았다.

100년 전의 8월, 국권을 침탈당한 수치스러운 날이 느닷없이 찾아왔던 것은 아니다.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는 순간부터 이미 국권을 잃고 껍데기만의 대한제국이 연명하고 있었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갑신정변이나 임오군란, 강화도조약 등 격변기의 조선에는 구석구석 열강들의 ‘눈독’이 서려 있었다. 그러한 ‘분위기’가 익고 무르익어 결정적인 분수령을 이루는 것이 역사의 이치다.

해방 이후 지금 2010년의 8월에 지난 65년을 돌이켜 보라. 6·25전쟁이 있었고 민족은 남과 북으로 갈라져 국토는 반 토막이 되었다. 남한은 남한의 길을, 북한은 북한의 길을 걸었다. 달리하는 이념을 서로 인정하고 각자의 길을 걸은 것이 아니었다. 우리는 휴전 상태에서 휴전선을 가운데 두고 끊임없이 평화와 민주를 위협하는 세력으로서의 북한을 경계하며 자주국방의 토대를 쌓는 데 온 힘을 기울였다. 우리의 65년은 격변의 시간이었고 오늘의 번영에는 엄청난 희생과 수고가 밑거름이 됐다.

자유민주주의를 선택한 우리는 경제성장과 문화적 번영, 외교와 스포츠에서까지 세계가 주목하는 나라가 되었다. 그러나 북한은 여전히 폐쇄적이고 위험한 집단으로 인식되고 있으며 수시로 도발을 감행하고 있다. 지난봄 천안함 폭침(爆沈)이 그들의 정체성을 세계에 알리는 또 한번의 도발이었음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이것이 경술국치일로부터 100년이 지난 2010년 8월 우리의 자화상이다.

그러나 냉정하게 우리의 안쪽을 들여다보면 100년 전과 닮은 것이 참으로 많다. 지금 우리의 정치와 교육, 도덕과 풍속은 온전한가. 그렇지 않다. 따지고 볼수록 매우 위험한 지경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무엇보다 보수와 진보로 나뉜 지도층의 이념적 대립은 자기 방어를 위해 국가 안보를 왜곡하는 수준에까지 도달했다. 그러한 파장은 교육현장에도 직접 침투되고 있다.

발전을 위한 다양한 의견은 필요하고 다소의 충돌과 격론도 필요하다. 그러나 지금은 그 도를 넘고 있다. 자기 주장만 옳다고 우기는 데 너무나 익숙해져 있으며 그것이 발전을 위한 것인지 퇴보나 자멸로 가는 길인지는 안중에 없는 듯하다.

100년 후의 8월을 생각해 보자. 그때 한반도는 어떤 모습일까. 그때 대한민국은 어떻게 존속하고 있을까. 지금의 서울은 그때 어떤 모습이고, 지금의 부산·광주는 또 어떻게 달라져 있을까.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행복할까, 불행할까.

지금 20대를 기준으로 삼아도 3대 이상이 지나버릴 먼 시간, 그러나 그 시간이 멀리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가 지금 과거의 시간들을 한순간에 되짚어 보듯 그때의 우리 후손들도 오늘로부터의 100년을 순식간에 역산(逆算)해 볼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자기 주장만 내세우며 소탐대실(小貪大失)의 교훈을 망각한 자들, 타협과 화합의 미덕은 아예 못 배운 듯 국가 안보까지 집단이기주의에 이용하는 자들에게 묻고 싶다. 100년 후의 자손들에게 경술국치와 같은 유산을 남겨주는 부끄러운 조상이 될 것인가.

김법혜 스님 민족통일불교중앙협의회 의장·민주평통자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