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끝나지 않은 주부 재벌의 꿈:美 사업가 마사 스튜어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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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마사는 미국인의 삶을 요리하고 바느질하고 페인트칠한다."

1996년 마사 스튜어트를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25인'중 한명으로 선정했던 미 시사주간지 타임이 97년 신년호에서 그녀에게 보낸 찬사다. 폴란드계 이민 노동자의 둘째딸로 태어나 '아메리칸 드림'을 이룬 '마사 스튜어트 옴니미디어(MSO)'그룹의 마사 스튜어트(61) 회장의 영광은 그러나 올해 들어 무참하게 금가기 시작했다.

마사의 성공 신화는 가난했던 어린 시절 꿨던 '꿈'에서 시작됐다. 아름다운 식탁과 잘 가꾼 정원, 따뜻한 미소로 가득 찬 거실…. 성장한 마사는 꿈을 실천에 옮기기 시작했다. '행복한 가정의 상품화'였다. 미국 중산층은 마사가 직접 구워낸 비스킷, 마사가 만들어낸 파티 장식, 정원 꾸미기 비법들을 흔쾌하게 사들였다.

금발의 마사가 TV에서 과자를 만들거나 파티준비·정원가꾸기를 솜씨있게 해내는 모습은 전통적인 주부상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주부들 사이에서 점차 '마사 모먼트(Martha Moment)'라는 신조어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마사가 요리를 하듯 즐거운 시간'이란 뜻이다.

마사가 창간한 생활잡지 『마사 스튜어트 리빙』은 단숨에 2백40만명의 정기 구독자를 확보했고, 같은 이름의 CBS TV쇼는 폭발적인 시청률을 기록했다. 99년 10월 MSO 주식이 뉴욕 증시에 상장되자 마사는 순식간에 6억달러의 재산을 지닌 주부재벌이 됐다.

그러나 올해 6월부터 모든 것이 달라졌다. '마사 모먼트'란 말도 '마사의 위기'로 의미가 바뀌었다. 발단은 주식 내부자 거래였다. 올초 엔론·월드컴·글로벌 크로싱 등 내로라하는 대기업들을 파산으로 몰고 간 기업부정 사건에 그녀마저 연루된 것이다.

미 증권거래위원회(SEC)와 연방 검찰은 "마사 회장이 지난해 말 생명공학회사 임클론의 주식을 매각한 것은 경영진으로부터 내부정보를 미리 빼냈기 때문"이라며 조사에 착수한다고 발표했다. MSO사의 주가는 주당 21달러에서 5달러로 곤두박질쳤다. 곧이어 증권거래위원회는 민사소송을, 검찰은 형사기소 방침을 밝혔다. 피해를 본 소액투자자들의 집단 손해배상소송도 잇따랐다. 마사의 파멸은 시간문제였다.

그러나 이때 수백만명의 미국 주부들이 나섰다. 이들은 '마사 구하기(SaveMartha. com)'사이트를 개설하는 등 마사를 돕기 위한 전국적인 캠페인에 돌입했다. 지난달 25일자 미 경제주간지 포천은 "마사 팬들이 인터넷 쇼핑몰에서 K마트까지 떼지어 몰려다니며 마사 제품을 사재기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주부들의 힘'으로 45%나 폭락했던 마사 제품의 판매량은 21% 신장으로 반전했다. 마사 구하기 사이트의 개설자 존 스몰은 "나는 매일 마사 이불을 덮고 마사 베개에 얼굴을 묻고 잔다. 마사는 가족 같은 사람이다. 나쁜 일이 생겼다고 가족을 버릴 수는 없다"고 말했다.

미국 주부들이 살리고 싶은 것은 마사 개인일까, 아니면 마사가 대신 제공했던 자신들의 '꿈'일까.

정효식 기자 jjpo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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