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랑의 현대사속독특한 인물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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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면

방대한 역사 기록을 남긴 조선시대인들의 후손답지 않게 현대 한국인은 어느 틈인가 기록을 알뜰하게 남기거나 소중히 다룰 줄 모르는 사람들이 돼버렸다. 저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한국사람들은 일기도 회고록도 기행문도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실 명사들의 성공 스토리가 아닌, 자신의 삶을 진솔하게 서술한 자서전이나 회고록을 만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韓·美·日 3국인의 삶을 산 최기일 박사 자서전』이란 부제로 짐작하듯이 올해 80세의 최기일 박사도 결코 평범한 일생을 살지 않았다. 그는 1922년에 평북 삭주군에서 지주의 아들로 태어나 신의주고보를 다니면서 민족의식에 차츰 눈뜨기 시작하며 평생 친구가 되는 김준엽(전 고려대 총장)과 만나 함께 일본의 게이오(慶應)대학으로 유학을 간다. 그런데 이때 이후 그의 인생은 한국현대사의 격랑 속으로 내던져졌다. 그가 일본-한국-미국의 국적을 갖게된 배경이 그렇고, 장준하 등 굵직한 현대사 인물들과 교유하는 장면들이 그렇다. 따라서 이 책은 단순한 개인의 회고담으로 축소되기보다 그 시대의 체험자가 남기는 몇 안되는 소중한 역사적 증언으로 간주돼야 할 것이다.

모두 3부로 이뤄진 이 책의 1·2부는 일제시대에 대한 회상으로, 전체의 70%를 차지하고 있다. 특히 20·30년대 유년·소년시절에 견문한 일제통치 하의 생활상과 사회상에 대한 세밀한 기억은 마치 흙모래 밭에서 채취한 사금(砂金)처럼 빛이 난다. 아마도 한국을 떠나 미국에서 산 55년간의 세월동안 고국을 바라보며 늘 고향을 회억(回憶)하고 과거를 반추해 왔기 때문에 20세기 초엽 평안북도 농촌의 풍속화첩을 선명하게 그려낼 수 있었으리라.

일제 말기에는 학병으로 입대하기를 거부하다 시멘트공장에서 2년간 강제노역을 했던 그는 해방 이후에는 돈암장에 들어가 이승만의 공보비서로 2년간 일한다.

이 와중에 이북의 고향에서는 공산당에 집안 재산이 몰수되고 아버지는 행방불명된다. 극도의 좌절과 환멸 속에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프린스턴대학을 졸업하고 하버드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는다. 대학에서 경제학 교수로 활동하던 중 83년 미국으로 망명해 온 김대중을 만난다. 이후 하버드대학의 베이커·라이샤워 교수 등과 더불어 김대중을 지원하며, 미 국무부나 송가스·케리 상원의원에게 서신을 보내는 등 한국의 민주화를 위해 헌신했다.

3부 '가까이서 본 이승만, 김대중'에서는 36년간이라는 시간적 간격을 사이에 두고 있지만, 그가 가까이서 관찰한 한국의 두 정치지도자를 그리고 있다. 한국의 현실에 대해 무지하면서도 다른 사람과 대화를 할 줄 모르는 독존적인 이승만과 예의가 없고 인색하기 짝이 없었던 프란체스카, 돈암장을 드나들던 김구·여운형·송진우·장덕수 등 지도자들과 임영신·윤치영·이기붕 등 측근들에 대한 인물 촌평이 날카롭고 흥미롭다. 특히 이기붕은 정직하고 예의바른 것 외에는 별다른 능력이 없었던 까닭에, 오히려 이승만 부부의 신임을 받게 됐다고 회고하고 있다.

한편 미국 보스턴에서 만나 약 2년간 자주 만난 김대중은 자신의 학식을 과시하고 싶어하나 남의 말을 경청할 줄 모르고, 도대체 질문을 하지 않는 사람으로 묘사되고 있다. 글라이스틴 전 대사 등 주변 인사들이 김대중에 대해 내린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평도 들어 있다.

저자가 오랜 세월 영어를 사용해 책에는 어색한 문장이 더러 눈에 뜨이지만, 읽어 나가는데는 그다지 방해가 되지 않고 도리어 친근한 느낌마저 주고 있다. 미국에서 바라본 한국사회에 대한 단상과 한국사람들에 대한 고언은 깊이 음미해 볼만한 가치가 있다.

박원호<고려대 동양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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