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8천개 폐연료봉 손댈지 주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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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북한이 예상보다 빠른 걸음으로 핵동결 해제조치를 위한 수순 밟기에 착수했다.

외무성 담화 발표 하루 만인 13일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봉인해제와 감시카메라 철수를 요구하고 나선 것은 말뿐 아니라 행동으로 옮기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으로 풀이된다.

◇주목되는 후속조치=북측 요구에도 불구하고 IAEA가 동결감시 프로그램을 중단하기는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북한이 이제 와서 IAEA 측에 내놓은 긴급전문가 회의 등 수습방안을 수용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당국자는 "IAEA에 대한 북한의 요청은 핵동결의 일방적인 해제조치를 강행하기 위한 명분 쌓기용일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당국자는 북한이 IAEA의 개입을 요구한 데 대해 "직접 행동에 들어가기까지는 당분간 시간 여유가 있다는 것을 시사하는 측면이 있다"고 분석했다. 그렇지만 북한은 미국과 국제사회의 태도가 뻣뻣하다고 판단되면 결국 핵동결 해제를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며 영변지역의 핵시설을 재가동하는 작업에 들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순서는 50MWe급 발전소의 건설 재개 쪽이 될 가능성이 크다. 대북 중유(重油)지원 중단 조치에 따른 전력손실 때문이란 주장에 맞추려면 실험용 원자로보다는 원전(原電)이 적합하기 때문이다.

이에 앞서 북한은 IAEA의 감시요원을 추방하는 등의 조치를 취할 가능성도 있다. 경우에 따라 IAEA의 공정성을 시비삼아 탈퇴를 선언하거나 핵확산금지조약(NPT)의 준수를 거부할 수도 있다.

문제는 북한이 방사화학실험실 가동 등 2단계 조치에 이어 봉인된 8천여개의 폐연료봉을 꺼내려고 시도할 경우다. 1994년 미국의 북핵시설 폭격 시도가 북한이 폐연료봉에 손을 댄 데 워싱턴 측이 자극받아 결정됐던 전례가 있다.

◇북한 핵감시 어떻게 이뤄지나=IAEA는 94년 5월부터 두명의 사찰관을 상주시켜 핵시설에 대한 봉인 및 감시장비 점검활동을 벌여오고 있다. 현재 봉인조치된 시설은 5MWe급 실험용 원자로(평북 영변)를 비롯한 다섯곳. 원통형의 금속제 봉인은 뚜껑을 임의로 열면 흔적이 남고 줄이 끊어져 표시가 난다.

또 핵연료의 이동이 이뤄지는지를 살피기 위한 감시카메라는 봉인시설을 포함한 감시대상 안팎에 사각지대가 없도록 설치한다. 필름과 배터리의 수명이 3개월 가량이어서 대개 이 주기에 맞춰 정기사찰이 벌어진다.

북한은 북·미 기본합의를 내세워 동결한 핵시설은 IAEA의 사찰대상에서 제외된다며 사찰과 조사활동을 불허하고 있으며, 동결상태 감시만을 제한적으로 허용하고 있다.

이영종 기자

yj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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