⑤ 건설업계:"살림 경험이 최고의 무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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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7면

건설업계는 금녀(禁女)의 구역이었다. 일 자체가 험한 데다 "여자가 웬 건설업이야"하는 식의 곱지 않은 주위 시선 때문이 컸다. 대한건설협회에 따르면 올해 시공능력 1백억원 이상인 1천여 건설업체 중 17명이 여성 사장이다. 그러나 이중 실제로 의사결정을 하는 여사장은 손가락을 꼽을 정도다.

이같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건설 외길만 파온 여성 사장들이 최근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올해 매출 8백억원을 바라보는 동보주택건설 조영숙(60)사장은 "생활하기 편한 집은 여자가 잘 안다"는 자신감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대박을 노린 한탕성 공사보다 살기 편안하고 좋은 집을 지어야겠다는 생각으로 회사를 키워 왔다"고 말한다.

1982년 대규모 빌라단지였던 서울 충정로의 동보빌라가 첫 사업이었다. 이후 무차입 경영과 돌다리도 두드려 건너는 보수적 경영으로 조금씩 키웠다.

올해까지 3천2백가구의 아파트 및 다세대 주택을 건설했다. 원주와 성남 등 지방에서 주로 사업을 한 때문에 서울에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원주에선 프리미엄이 붙을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조사장은 처음부터 땅을 산 뒤 건물을 지어 분양하는 시행·시공을 함께 해왔다. 위험도 적고 충실히 건설할 수 있어서다. 덕분에 창업 이래 단 한번도 적자를 내지 않았다. 부엌가구와 욕조 등 내부자재는 직접 고른다. 아파트에 혼을 불어넣기 위해서다.

30여명의 직원 중 감사·이사·기획실장 등 핵심 간부도 여성들이며 직원 대부분은 10년 이상 근무한 사람들이다. 1년에 한 차례 전직원이 함께 해외여행을 갈 정도로 가족적인 분위기를 중시한다. 광주사범학교를 나온 조 사장은 건설업을 창업하기 전 15년간 초등학교 교사 생활을 했다. 그는 "수입 내장재로 치장한 호화 아파트·주상복합빌딩은 분양가만 올릴 뿐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CNC종합건설의 손성연(43) 사장은 여성으로선 처음으로 토목기사 1급을 딴 전문 건설인이다. 대학에서 토목공학을 전공한 뒤 대림엔지니어링과 남광토건에서 10여년간 지하철 및 교량 시공을 맡았다.

이런 경력을 바탕으로 99년 창업했다. 올해 매출이 1백억원을 바라보고 있다. "80년대만 해도 공사 현장에 나가면 '여자라 재수없다'며 근로자들이 수근거리기도 했다"면서 "그러나 이제는 '여성이 더 신용있다'며 좋아하는 건축주도 있을 정도"라고 털어놓았다.

그는 또 건축주 접대가 가장 큰 애로점이라고 밝혔다. "여자로 대할 수 있어 술이나 저녁 접대는 일절 하지 않았다"면서 "이렇게 아낀 접대비로 더 좋은 서비스를 해줬더니 오히려 일 잘하는 업체로 인정하더라"고 손 사장은 말했다.

신평산업개발 김경숙(48) 사장도 중견 건설인이다. 99년 창업, 서울 신림동 등에 연립주택·오피스텔을 짓고 있다. 올해 매출은 60억원 정도. 역시 '여자가 무슨 건설을 해' 하는 선입관이 가장 어려웠다고 한다. 그는 "공사가 끝난 후 점검하는 작업은 꼼꼼한 여성이 훨씬 낫다"면서 "앞으론 여성들이 주택사업에 두각을 나타낼 것"라고 확신했다.

시행·분양대행 전문업체인 금산하우징 박경자(49) 사장은 지난해 외국인 주거전용 오피스텔인 바비엥서울로 두각을 나타냈다. 올해 매출은 5백억원 정도다.

낡은 주택을 개보수해 다시 파는 사업으로 건설업에 입문, 99년 창업했다. 시행사는 자금조달과 인허가, 공사 발주 등을 모두 책임져야 한다. 박사장은 "가정에서 느낀 경험이야말로 건설업·건축업에서 여성이 두각을 나타낼 수 있는 최고의 무기"라고 말했다.

김태진 기자

tj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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