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검 ‘검사 청문회 증인’ 딜레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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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대검찰청이 김태호 총리 후보자 인사청문회의 증인으로 채택된 현직 검사들을 불출석시키기로 내부 방침을 정해 놓고도 공식 입장은 밝히지 않고 있다. 두 개의 상반된 법률 사이에서 어떤 법을 지키지 않겠다는 입장을 공개하기 어렵다는 판단 때문이다.

노환균 서울중앙지검장은 총리실 ‘민간인 사찰’ 수사와 관련해 증인으로 채택됐고, 우병우 대검 수사기획관은 지난해 김 후보자를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에게서 수만 달러를 받은 혐의로 내사한 것과 관련해 증인으로 채택됐다.

그러나 형법 제126조는 검찰·경찰 등 수사기관 관계자가 조사 과정에서 알게 된 피의사실(혐의 내용)을 기소 전에 공개할 경우 처벌하도록 하고 있다. 이른바 ‘피의사실공표죄’다. 이 조항에 따르면 현직 검사가 청문회에 나가 내사나 수사 내용을 밝힌다면 현행법을 정면으로 위반하는 것이 된다.

반면 국회 청문회 증인 등에게 적용되는 ‘국회에서의 증언·감정 등에 관한 법률’을 보면 상황은 180도 달라진다. 이 법 제4조에는 전·현직 공무원이 국회의 증언 요구를 받을 경우 ‘직무상 비밀’을 이유로 증언을 거부할 수 없도록 규정돼 있다. 군사·외교·대북관계의 국가기밀일 때만 예외적으로 거부할 수 있다. 불출석해 기소되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선고받을 수 있다. 대검은 고심 끝에 “두 개의 상반된 법률 가운데 하나를 지켜야 한다면 수사기관에 직접 적용되는 형법 조항을 지키는 게 맞다”고 결론을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한 대검 간부는 “청문회에 출석해서 ‘공개해라’ ‘공개 못 한다’ 불필요한 입씨름을 하느니, 내사·수사 내용을 밝히기 어려운 이유를 서면으로 제출하는 게 낫지 않겠느냐”고 했다.

전진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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