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 cover story] 서울 내발산동서 분식집 하는 김입분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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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맹이들 편하라고

샌드위치를 포장해서 내놓지요

얼마를 놓고 가든 신경 안 써요

그냥 집어갔다가

다음날 찾아와 사과하기도 해요

그래서 돈 벌겠느냐고요 ? 호호

퍼주기 대장의 돈통엔 가득합니다

믿음

사진 찍자는 말에 김입분(50)씨는 손사래부터 쳤다. 이유는 자신이 "본보기가 될 만한 사람이 아니다"라는 것. 그러나 자기 자신은 잘 모르는 법이다.

웃는 모습이 '이쁜' 입분씨는 분식점 주인이다. 서울 내발산동 발산초등학교 앞에 있는 가게는 좀 옹색하다. 몇 평 안 되는 공간에 한쪽으로 부엌을 차려놓고 테이블 두 개 붙여 놓은 게 전부다. 메뉴도 샌드위치와 떡볶이 정도. 간판마저 전에 있던 문구점 것 그대로다.

그러나 입분씨의 분식점은 세상 어느 식당보다 푸근한 곳이다. 딱 귀여울 정도의 푼수기 있는 주인이 '퍼주기 대장'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떡볶이를 파는 틈틈이 혹시 돈이 없어 못 먹는 아이는 없는지를 확인한다. 그리고 혹시 그런 녀석이 있으면 떡볶이를 한 사발 퍼줘야 직성이 풀린다. 할머니와 둘이 사는 꼬맹이를 눈에 띌 때마다 거뒀더니, 어느 날 그 할머니도 미안했는지 그러더란다. "우리 손자 먹이려고 장사해?"

하교 시간 꼬마 손님들이 들이닥치면 정신이 없다. 그래서 입분씨는 무인 판매를 한다. 가게 앞에 샌드위치를 포장해 내놓고는 그 옆에 돈 통을 놔둔다. 샌드위치는 하나에 500원. 그러나 입분씨는 얼마를 내든 신경 안 쓴다. "돈 없다고 못 먹게 할 수는 없잖아요." 가게를 비울 때도 샌드위치와 돈통을 잘 들여놓지 않는다.

이런 일도 있었다. 지난해 여름 가게 앞을 지나던 노정화(18)양과 친구들은 샌드위치를 집어들었다. 마침 입분씨는 없었다. 장난기가 발동한 노양과 친구들은 그냥 자리를 떴다. 그런데 얼마 못 가 걸어오는 입분씨가 보였다. 줄행랑. 그런데 죄책감이 들었다. 결국 다음달 노양은 몰래 돈통에 샌드위치 값을 갖다놨다. 그것도 두 배로. 머리 숙여 사과도 했다. 이에 입분씨는 "도망치는 거 보면서 속으로 '체하겠다. 뛰면 안 되는데'하며 걱정했다"고 웃었다.

이러면서 돈을 번다면 거짓말이다. 입분씨도 인정한다. "돈 못 벌어요. 그런데 정산을 안 하니 얼마나 못 버는지는 몰라요."(웃음) 그래도 입분씨는 괜찮단다. "샌드위치에 재료가 부족하겠다 싶으면, 이웃들이 다 채워줘요. '사과를 샀는데 좀 많아서'라면서요. 얼마나 신기한지. 그러니까 저는 돈 못 벌어도 돼요."

물론 입분씨가 소일삼아 장사를 하는 건 아니다. 은행원 남편 덕분에 그녀도 한때 TV에만 빠져 사는 아줌마였다. 그러나 남편이 은행을 그만두고 시작한 사업이 순식간에 기울었다. 당장 잘 곳을 걱정해야 했던 시절. 결국 입분씨도 팔을 걷어붙였고, 2년 전 분식점을 차렸다. 그러나 한 평 부엌의 물일도 그녀의 웃음을 빼앗진 못했다. 턱도 없었다.

"장사를 하면서 남편 고마운 것도 알게 됐고, 이웃들과도 친해졌어요. 이제야 제대로 살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글=남궁욱 기자

사진=권혁재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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